떠나면 그게 여행이다 - 동해를 다녀오며 2
사진 그리고 이야기/여행길에서 2006/06/12 15:41 여행이 별거 인가 싶다.
그냥 시간이 나는 날,
아무 것도 안챙기고,
떠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훌쩍 마음이 이끄는대로 떠나면
그 길이 여행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그냥 차를 몰고 또 몰아 가는 여행,
나는 그런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6월 6일과 7일에 무작정 떠나서 동해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풍경이 손짓을 하면
그냥 아무 곳에나 차를 세우고 그곳에서 놀았다.
속초가는 버스를 타면 항상 홍천을 지나서 만나는
화양강 휴게소에서 잠시 쉬곤 했다.
그 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우리 차를 갖고 갔는 데도
우리도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휴게소 아래쪽으로 멀리 다리가 보이고
다리 아래서 누군가 고기를 잡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자랄 때,
나는 고기잡는 그 어망을 ‘족대’라고 불렀다.
서울오니 아이들이 그걸 가리켜 ‘반도’라고 했다.
‘반도’라는 그 말이 지금도 나에겐 어색하다.
말이 한번 몸에 배면
그 자연스러움을 지우기가 어려운가 보다.
파라솔이 무척 더웠나 보다.
평생 햇볕을 가려주며 더위를 머리 맡에 이고 살 줄 알았는데
물 속으로 도망가서 머리를 박고 절반쯤 잠수를 하고야 말았다.
개울가에서 물놀이 이외에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동그랗고 납작한 돌을 모아 잘만 펴면
개울가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금방 예쁜 자리 하나를 마련해줄 수 있다.
그럼 그 개울가에 두 사람의 추억 하나가 서리는 것이다.
어릴 때, 내가 아이들과 개울가에서 그렇게 놀며 자랐다.
그러고 보면 내 고향의 개울가엔
내가 누군가를 위해 마련했던 수많은 자리의 기억이 있는 셈이다.
휴일의 한낮에도 별로 차를 만날 수 없지만
그러나 이곳도 휴가철에는 상당히 차들이 붐빈다.
난 휴가철이 아직 멀거나 휴가철을 지난 뒤의 한가한 길을 좋아한다.
한가한 길은 차가 지나갈 때 몸을 부르르 떨다가
차를 보내고 나면 다시금 금방 다소곳해진다.
물은 가끔 그 옆에 있으면
옆사람의 얘기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항상 시끄럽기 그지 없는 나로선
물이 그 엄청난 소리를 어떻게 버리고
조용히 깊어질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녀가 내 사진을 찍는다.
찍어서 그녀의 마음 속에 담아둔다.
그건 내가 볼 수는 없는 나이다.
그녀만의 나이다.
그녀가 내 사진을 찍었다.
그녀가 항상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도 그녀의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 같지만 사실은 찍을 때 그녀의 눈 속에 있던 나이다.
아울러 그때 그곳의 추억도 함께 보인다.
사람들은 대개 그늘지고 음습한 곳을 싫어하지만
이끼에겐 그곳이 안락한 집이다.
이끼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파랗게 치장을 한 고운 삶을 가꾸며 살아간다.
그렇게 어디서나 삶은 있다.
그 삶 속에 또 나름대로의 고난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걷기만 해도
갖가지 꽃을 만날 수 있다.
이건 매발톱꽃이라 불린다.
이 꽃은 6, 7월에 볼 수 있다.
꽃 세 송이가 계곡의 물살에 부대끼고 있다.
물은 시리고 투명하다.
나무 끝에 있을 때는 시리고 투명한 바람이 흔들더니
계곡으로 내려오니 이번에는 물이 꽃을 흔든다.
꽃은 아마도 지금쯤 이게 제 삶의 운명이려니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물살에 부대끼는 꽃들이 어느 정도 달관한 듯 보였다.
남대천과 동해바다가 만나는 곳.
원래 넓게 펼쳐져 있는게 바다이다.
그래서 사진 속에서도 바다를 넓게 펼쳐들고 싶었다.
오색온천에서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으로 기분이 좋았던
그녀의 미소를 담을 수 있었다.
기분 좋기는 나도 마찬가지.
머리가 엉망이야.
모자쓰고 찍어야 해.
그냥 시간이 나는 날,
아무 것도 안챙기고,
떠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훌쩍 마음이 이끄는대로 떠나면
그 길이 여행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그냥 차를 몰고 또 몰아 가는 여행,
나는 그런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6월 6일과 7일에 무작정 떠나서 동해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풍경이 손짓을 하면
그냥 아무 곳에나 차를 세우고 그곳에서 놀았다.
속초가는 버스를 타면 항상 홍천을 지나서 만나는
화양강 휴게소에서 잠시 쉬곤 했다.
그 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우리 차를 갖고 갔는 데도
우리도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휴게소 아래쪽으로 멀리 다리가 보이고
다리 아래서 누군가 고기를 잡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자랄 때,
나는 고기잡는 그 어망을 ‘족대’라고 불렀다.
서울오니 아이들이 그걸 가리켜 ‘반도’라고 했다.
‘반도’라는 그 말이 지금도 나에겐 어색하다.
말이 한번 몸에 배면
그 자연스러움을 지우기가 어려운가 보다.
파라솔이 무척 더웠나 보다.
평생 햇볕을 가려주며 더위를 머리 맡에 이고 살 줄 알았는데
물 속으로 도망가서 머리를 박고 절반쯤 잠수를 하고야 말았다.
개울가에서 물놀이 이외에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동그랗고 납작한 돌을 모아 잘만 펴면
개울가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금방 예쁜 자리 하나를 마련해줄 수 있다.
그럼 그 개울가에 두 사람의 추억 하나가 서리는 것이다.
어릴 때, 내가 아이들과 개울가에서 그렇게 놀며 자랐다.
그러고 보면 내 고향의 개울가엔
내가 누군가를 위해 마련했던 수많은 자리의 기억이 있는 셈이다.
휴일의 한낮에도 별로 차를 만날 수 없지만
그러나 이곳도 휴가철에는 상당히 차들이 붐빈다.
난 휴가철이 아직 멀거나 휴가철을 지난 뒤의 한가한 길을 좋아한다.
한가한 길은 차가 지나갈 때 몸을 부르르 떨다가
차를 보내고 나면 다시금 금방 다소곳해진다.
물은 가끔 그 옆에 있으면
옆사람의 얘기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항상 시끄럽기 그지 없는 나로선
물이 그 엄청난 소리를 어떻게 버리고
조용히 깊어질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녀가 내 사진을 찍는다.
찍어서 그녀의 마음 속에 담아둔다.
그건 내가 볼 수는 없는 나이다.
그녀만의 나이다.
그녀가 내 사진을 찍었다.
그녀가 항상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도 그녀의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 같지만 사실은 찍을 때 그녀의 눈 속에 있던 나이다.
아울러 그때 그곳의 추억도 함께 보인다.
사람들은 대개 그늘지고 음습한 곳을 싫어하지만
이끼에겐 그곳이 안락한 집이다.
이끼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파랗게 치장을 한 고운 삶을 가꾸며 살아간다.
그렇게 어디서나 삶은 있다.
그 삶 속에 또 나름대로의 고난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걷기만 해도
갖가지 꽃을 만날 수 있다.
이건 매발톱꽃이라 불린다.
이 꽃은 6, 7월에 볼 수 있다.
꽃 세 송이가 계곡의 물살에 부대끼고 있다.
물은 시리고 투명하다.
나무 끝에 있을 때는 시리고 투명한 바람이 흔들더니
계곡으로 내려오니 이번에는 물이 꽃을 흔든다.
꽃은 아마도 지금쯤 이게 제 삶의 운명이려니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물살에 부대끼는 꽃들이 어느 정도 달관한 듯 보였다.
남대천과 동해바다가 만나는 곳.
원래 넓게 펼쳐져 있는게 바다이다.
그래서 사진 속에서도 바다를 넓게 펼쳐들고 싶었다.
오색온천에서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으로 기분이 좋았던
그녀의 미소를 담을 수 있었다.
기분 좋기는 나도 마찬가지.
머리가 엉망이야.
모자쓰고 찍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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