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간다
사진 그리고 이야기/서울에서 2005/05/28 13:02 5월의 끝자락이다.
항상 시작의 자리는 그 느낌이 설레임으로 고개를 들고
그 끝자락은 약간의 슬픔을 동반한채 마무리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마당의 파라솔엔 5월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장미가
이제 그 끝자락에서 꽃잎을 한잎 두잎, 나뭇잎에 곁들여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한때 제 몸이었던 넝쿨장미의 그늘 속에,
또 때로는 그 넝쿨 장미의 사이사이를 비집고 내려온
손바닥 만한 양광의 터에 몸을 눕히고 꽃잎이, 나뭇잎이 말라간다.
파라솔 위에 몸을 눕힌 나뭇잎은
처음 시선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슬픔이었지만
계속 들여다 보니 아주 편안해 보였다.
마지막이란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편안한 것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미의 그 화려한 꽃잎엔 삶의 흔적이 여실이 남아았다.
올해는 진딧물 약이 아주 효험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아 장미의 여린 꽃잎을 파먹으며 삶을 이어간 것이 분명하다.
꽃잎 하나가 지상으로 내려올 때
그들의 삶까지 모두 끌고 함께 내려와 버렸다.
항상 장미를 볼 때면 그 화려함 때문에
일상의 비루함에 대해선 한번도 생각이 미친 적이 없었지만
그 끝자락의 꽃잎 하나는
장미의 아름다움 역시
삶의 한가운데 있었음을 일러주고 있었다.
햇볕 속에 꽃잎이 말라간다.
한때 꽃의 아름다움을 키우고 양육했던 햇볕이
이젠 그 아름다움을 파삭파삭하게 말려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진한 채색을 덧입히기 시작했다.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는 꽃잎의 곁에서
하루살이 한마리가 꽃꽃한 자세로 삶을 마감한채 함께 몸을 말리고 있었다.
정지된 그들의 시간 옆으로 5월의 마지막 시간이 무심히 흘러간다.
마른 몸도 여럿이 몸을 부비고 있으면 그 느낌이 따뜻하다.
때로 서로 부빌 수 있는 체온의 따뜻함보다 더 큰 위안은 없다.
항상 시작의 자리는 그 느낌이 설레임으로 고개를 들고
그 끝자락은 약간의 슬픔을 동반한채 마무리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마당의 파라솔엔 5월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장미가
이제 그 끝자락에서 꽃잎을 한잎 두잎, 나뭇잎에 곁들여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한때 제 몸이었던 넝쿨장미의 그늘 속에,
또 때로는 그 넝쿨 장미의 사이사이를 비집고 내려온
손바닥 만한 양광의 터에 몸을 눕히고 꽃잎이, 나뭇잎이 말라간다.
파라솔 위에 몸을 눕힌 나뭇잎은
처음 시선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슬픔이었지만
계속 들여다 보니 아주 편안해 보였다.
마지막이란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편안한 것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미의 그 화려한 꽃잎엔 삶의 흔적이 여실이 남아았다.
올해는 진딧물 약이 아주 효험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아 장미의 여린 꽃잎을 파먹으며 삶을 이어간 것이 분명하다.
꽃잎 하나가 지상으로 내려올 때
그들의 삶까지 모두 끌고 함께 내려와 버렸다.
항상 장미를 볼 때면 그 화려함 때문에
일상의 비루함에 대해선 한번도 생각이 미친 적이 없었지만
그 끝자락의 꽃잎 하나는
장미의 아름다움 역시
삶의 한가운데 있었음을 일러주고 있었다.
햇볕 속에 꽃잎이 말라간다.
한때 꽃의 아름다움을 키우고 양육했던 햇볕이
이젠 그 아름다움을 파삭파삭하게 말려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진한 채색을 덧입히기 시작했다.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는 꽃잎의 곁에서
하루살이 한마리가 꽃꽃한 자세로 삶을 마감한채 함께 몸을 말리고 있었다.
정지된 그들의 시간 옆으로 5월의 마지막 시간이 무심히 흘러간다.
마른 몸도 여럿이 몸을 부비고 있으면 그 느낌이 따뜻하다.
때로 서로 부빌 수 있는 체온의 따뜻함보다 더 큰 위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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