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시인과 걸개 그림, 그리고 한잎의 여자
글의 세상/시의 나라 2008/02/04 00:00명동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초입,
서울예술대학 드라마센터 앞에
시인 오규원의 걸개 그림이 걸렸습니다.
아, 그림은 아니군요.
사진이었습니다.
전에 본 적이 있는 사진이지만
세월에 묵히다 보면 사진이 그림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 사진에선 그림의 느낌이 났어요.
시인의 미간 오른쪽 위, 그림을 팽팽하게 당긴 힘이 풀어지면서
시인의 얼굴에 비스듬히 주름이 집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주름이 일렁입니다.
시인은 주름을 펼 생각도 않고
자신의 얼굴 한 귀퉁이에서 파도처럼 일렁이게 내버려둡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 파도가 일렁입니다.
그때마다 미간을 찌푸렸다 폈다 합니다.
오규원 시인의 1주기 추모제 행사,
행사의 마지막,
한잎의 여자를 보았습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죠.
아, 한잎의 여자구나.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처음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였다가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되었지만
나중엔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였다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여자”가 되버린 바로 그 여자였습니다.
그녀가 말했죠.
--오규원,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시를 사랑해서 모였데.
그 뒤의 말이 남은 듯 했지만
입안까지 치밀어올라온 슬픔이 그만 나머지 말은 삼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전에만 해도
난 시인의 언어가 시인의 안에서 솟는다고 생각했었는데
한잎의 여자를 보는 순간,
그건 한잎의 여자가 가져다준 언어란 걸 곧바로 알 수 있었죠.
그녀의 몸에서 한잎의 여자가 떠오르고,
그녀가 그 한잎의 여자를 시인에게 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이런 젠장할,
한잎의 여자는 한잎의 여자가 있어서 비로소 가능했던 거였어요.
한잎의 여자를 쓰고 싶다면
한잎의 여자를 찾아야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잎의 여자를 보았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2008년 2월 2일의 저녁 시간,
나는 드라마 센터의 한 귀퉁이에 앉아
오규원 시인과 내내 함께 하다 왔습니다.
TAG 오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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