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나의 그녀/딸 2009/02/07 00:00 2월 5일 목요일,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딸아이가 학교를 졸업한 것은 이번까지 세번이다.
꼬박꼬박 졸업식장에 갔었고, 사진도 찍어두었다.
당연한 일 같지만 실제로는 사정이 있어 못오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사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도 그랬다.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랬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혼자 졸업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부모가 된 뒤로 딸아이 졸업식에는 빠지질 않았다.
다행히 그때마다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대체로 무난했지만
몇 번의 문제도 있었다.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고,
남자 아이한테 맞아서 입술이 터져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을 넘기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딸의 중학교 시절은 사실 화려했다.
공부를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보냈다는 얘기이다.
딸아이가 하고 싶어한 것 중에 공부는 없었다.
그렇지만 공부도 중간 이하로 떨어지진 않았다.
다니던 중학교와 함께 붙어있던 상고로 진학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이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가기가 싫었을 것이다.
지금도 딸은 중학교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고등학교는 졸업하게 되었다.
학교 졸업한 소감을 묻자 딸아이는 웃으며
“최종학력으로 고등학교까지는 채우게 되었네요”라고 말했다.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렸다.
고등학교를 안다닌 것이 아니라 못다닌 경험이 있는 나에게
그건 나중에 불편이 많이 따를 수 있는 일이었다.
딸은 내 얘기를 들어주었고,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고등학교를 계속 다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
어쨌거나 일본으로 유학가는데 여러모로 편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유학을 결심한 뒤로,
학교 공부를 뒷전으로 밀어두고 유학을 준비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은 별로이다.
하지만 딸은 자신의 선택 끝에서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은 다닐만 할거다.
딸아이가 3학년 때 다니면서 한해 동안 함께 한 의자와 책상.
하지만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냥 이름표만 붙어있을 뿐 자기 좋은 자리에 앉는다고 했다.
그런 자유분방함은 아주 좋았다.
졸업식 때 밀가루를 뿌리고 뒤집어쓰는 것은 여전하다.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아이키우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남의 아이들 언행에 대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남의 아이와 내 아이가 구별이 없어질 때가 많다.
손가락질하는 그 자리에 얼마든지 우리 아이가 서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일도
사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못할 일이 아니다.
자동차 경주에선 우승한 뒤 샴페인을 뒤집어쓰는 것이 통상적이다.
어떤 골프 대회에선 우승하면 우승자를 코스에 있는 연못에 집어 던진다.
아무도 그런 우승의 의식을 탓하지 않는다.
소수의 학생이 누리고 싶어하는
일탈된 졸업의 의식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밀가루 해프닝을 바라보는 나는 좀 이율배반적이긴 하다.
우리 아이가 그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지긴 했으니까.
딸에게 졸업을 축하한다며 건넸던 꽃은
꽃병에 꽂혀 집안 가득 향기를 선물했다.
딸이 부쩍 큰 느낌이다.
축하 향기가 당분간 계속 갈 것 같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딸아이가 학교를 졸업한 것은 이번까지 세번이다.
꼬박꼬박 졸업식장에 갔었고, 사진도 찍어두었다.
당연한 일 같지만 실제로는 사정이 있어 못오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사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도 그랬다.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랬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혼자 졸업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부모가 된 뒤로 딸아이 졸업식에는 빠지질 않았다.
다행히 그때마다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3년 2월 13일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운동장에서 졸업식을 했다.
2003년 2월 13일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운동장에서 졸업식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은 대체로 무난했지만
몇 번의 문제도 있었다.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고,
남자 아이한테 맞아서 입술이 터져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을 넘기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2월 10일 중학교 졸업식에서
2006년 2월 10일 중학교 졸업식에서
딸의 중학교 시절은 사실 화려했다.
공부를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보냈다는 얘기이다.
딸아이가 하고 싶어한 것 중에 공부는 없었다.
그렇지만 공부도 중간 이하로 떨어지진 않았다.
다니던 중학교와 함께 붙어있던 상고로 진학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이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가기가 싫었을 것이다.
지금도 딸은 중학교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5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2009년 2월 5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고등학교는 졸업하게 되었다.
학교 졸업한 소감을 묻자 딸아이는 웃으며
“최종학력으로 고등학교까지는 채우게 되었네요”라고 말했다.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렸다.
고등학교를 안다닌 것이 아니라 못다닌 경험이 있는 나에게
그건 나중에 불편이 많이 따를 수 있는 일이었다.
딸은 내 얘기를 들어주었고,
결과적으로 나중에는 고등학교를 계속 다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
어쨌거나 일본으로 유학가는데 여러모로 편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유학을 결심한 뒤로,
학교 공부를 뒷전으로 밀어두고 유학을 준비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은 별로이다.
하지만 딸은 자신의 선택 끝에서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은 다닐만 할거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5일 딸이 공부한 교실에서
2009년 2월 5일 딸이 공부한 교실에서
딸아이가 3학년 때 다니면서 한해 동안 함께 한 의자와 책상.
하지만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냥 이름표만 붙어있을 뿐 자기 좋은 자리에 앉는다고 했다.
그런 자유분방함은 아주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5일 딸이 다닌 학교의 운동장에서
2009년 2월 5일 딸이 다닌 학교의 운동장에서
졸업식 때 밀가루를 뿌리고 뒤집어쓰는 것은 여전하다.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아이키우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남의 아이들 언행에 대해 손가락질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남의 아이와 내 아이가 구별이 없어질 때가 많다.
손가락질하는 그 자리에 얼마든지 우리 아이가 서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일도
사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못할 일이 아니다.
자동차 경주에선 우승한 뒤 샴페인을 뒤집어쓰는 것이 통상적이다.
어떤 골프 대회에선 우승하면 우승자를 코스에 있는 연못에 집어 던진다.
아무도 그런 우승의 의식을 탓하지 않는다.
소수의 학생이 누리고 싶어하는
일탈된 졸업의 의식도 이해해줄 필요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밀가루 해프닝을 바라보는 나는 좀 이율배반적이긴 하다.
우리 아이가 그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지긴 했으니까.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5일 집에서
2009년 2월 5일 집에서
딸에게 졸업을 축하한다며 건넸던 꽃은
꽃병에 꽂혀 집안 가득 향기를 선물했다.
딸이 부쩍 큰 느낌이다.
축하 향기가 당분간 계속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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