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속에서 음을 집어내다 - 윤호간 콘서트 「피아노와 이빨」
전람회 혹은 공연 구경 2009/01/05 00:00 1월 3일 토요일에
남산 아래쪽으로 자리잡은
국립극장의 하늘극장에 가서
윤호간 콘서트 「피아노와 이빨」을 보았다.
사실 공연보러 가기 전엔 윤호간이 누구인지 몰랐다.
고흐전 보러가기 전에는 고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처럼 유명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윤호간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음악 공연이라고 하고,
그 공연의 명칭이 「피아노와 이빨」이라고 하니까
그냥 피아노치는 사람이려니 하는 것이 막연한 나의 짐작이었다.
이번이 700회째 공연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도록 공연을 해온 셈이다.
윤호간이 들려준 첫곡은
비틀즈의 Hey Jude.
그는 마치 파고들듯
피아노 가까이 몸을 낮추고 연주를 하곤 했다.
그의 공연이 속삭인다.
음악을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제게 있어 음악이란
피아노의 건반 속으로 섬세하게 손을 집어넣어
그 속의 음을 집어내는 거예요.
모래밭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무리 파도 모래밖에 나오지 않을 거예요.
땅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파도 흙밖엔 나오질 않아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이 모래밖에, 흙밖에 손에 쥐지 못하는 그곳에서
풀들은 땅속 깊숙이 뿌리를 뻗어
초록의 맵시가 매끄럽게 흐르는 잎을 푸른 음처럼 길어올리고,
꽃들은 때로 붉은 꽃을, 또 노란 꽃을 색색의 음처럼 길어올려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들긴다고 다 음을 길어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많은 경우 모래나 흙밖에 손에 잡히질 않아요.
그럴 때는 음악이 아니라 우당탕쿵탕하는 소음만 손에 잡히고 말거예요.
하지만 음을 아는 섬세한 손을 가지면
그때부터 피아노의 건반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곳에서 음을 길어올릴 수 있어요.
작곡가들이 이미 그곳에 무수한 음의 씨를 뿌려놓았어요.
나의 손은 그 음들의 뿌리가 되어 피아노 건반의 속에서 음을 건져올려요.
지금 내가 연주하고 있는 곡은 Hey Jude예요.
아마 이 곡을 아는 사람들은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이 곡은 원래 그의 목소리에 얹혀 흐르던 노래로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니까요.
이게 바로 그 곡이예요.
하지만 음악의 세계에선 같은 씨앗에서
똑같은 색의 음을 길어올릴 필요가 없어요.
꽃들이 그렇잖아요.
같은 꽃인데도 종종 모양과 색을 달리하곤 해요.
지금의 내 곡도 그런 거예요.
난 지금 피아노의 건반 속에서 나만의 Hey Jude를 길어올리고 있어요.
그가 한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
몇 번 피아노 연주회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주 가까이서 연주자의 손놀림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때였다.
연주자의 손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 건반을 ‘즈려밟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호간의 연주에선
자꾸만 피아노 건반쪽으로 파고들듯 몸을 낮추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가 피아노 건반 속으로 손을 들이밀고
그곳에서 섬세하게 음을 골라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친절한 편이어서,
원래 그의 얼굴은 B석에서만 마주볼 수 있었지만
그는 가끔 얼굴을 들어 가운데로 돌려주었고
심지어 정반대로 돌려주기도 했다.
음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굴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친절도 음악 못지않게 중요하다.
피아노 연주만 계속 이어지는 콘서트는 아니다.
모비딕이란 이름의 밴드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모비딕 멤버들이
모두 같은 미장원에서 머리를 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협연은 함께 연주하는 것이지만
이번 콘서트에선 윤호간의 피아노가 Rock의 길을 열어주고,
Rock이 피아노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할머니의 다듬이 소리도 함께하여 피아노의 길을 열어주고,
피아노 또한 할머니의 다듬이 소리 앞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길을 열어주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김인순이라고 했다.
또 심지어 객석에서 찰칵거리는 카메라의 셔터 소음도
중간부터 그의 연주와 함께 했다.
소설가 조경란은 그림을 배우러 미술학원에 등록한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림을 배우려고 하느냐는 미술학원 선생의 질문에
조경란은 “혹시 그림이 소설의 길을 열어주지 않을까 해서요” 라고 답했다고 했다.
세상은 서로 다른 것들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듯 하지만
때로 그 다른 것들이 서로의 길을 열어주곤 한다.
때문에 협연한다는 것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서로서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함께 산다는 것도 알고 보면 혼자가다 막힌 길을 서로 열어주는 것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들을 때,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도
서로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에 일방적인 것은 별로 없다.
피아노가 열어준 Rock의 길에서
비틀즈, 딥퍼플, 퀸의 음악이 뜨겁게 타올랐다.
공연 중간에 지붕이 열렸다.
지붕이 열리자
공연자들이 적잖이 뻘쭘해 하는 눈치였다.
원래는 지붕이 열리면 레이저 쇼가 펼쳐져야 하는데
그게 없고 훤한 빛만 가득이었으니...
난 하도 더워서 실내 온도 조정하는 줄 알았다.
밤공연을 본 사람들은 색다른 체험 하나를 더 챙겨갔을 듯 싶다.
앵콜 공연 때, 난데없이
원더 걸스, 아니 언더 걸스 등장하셨다(아직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 중이니).
노바디 불러주고 들어갔다.
갑자기 피아노와 이빨이 아니라
피아노와 웬갖 잡탕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생이란게 그런 것인지 모른다.
온갖 잡탕으로 섞여 살아가는.
공연 끝나고 미리 구입해둔 CD에 사인받았다.
같이간 일행이 윤호간을 사이에 두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찍고 보니 그녀와 윤호간의 사이에서
뒷편 포스터 속의 그가 더 선명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원래는 초점이 나간 것이지만
그의 설명대로 하자면 앞쪽 사람들은 저음으로 처리하고
뒤쪽 포스터의 그를 고음으로 연주해본 촬영이었다.
후후, 난 역시 해석과 응용력 하나는 엄청 뛰어나다.
음악을 무슨 수로 글로 전하랴.
황동규 정도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윤호간은 아쉽게도 그의 취향도 아니다.
취향이 맞고 기회가 된다면
가서 직접 보고 들어보시길...
남산 아래쪽으로 자리잡은
국립극장의 하늘극장에 가서
윤호간 콘서트 「피아노와 이빨」을 보았다.
사실 공연보러 가기 전엔 윤호간이 누구인지 몰랐다.
고흐전 보러가기 전에는 고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처럼 유명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윤호간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음악 공연이라고 하고,
그 공연의 명칭이 「피아노와 이빨」이라고 하니까
그냥 피아노치는 사람이려니 하는 것이 막연한 나의 짐작이었다.
이번이 700회째 공연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도록 공연을 해온 셈이다.
윤호간이 들려준 첫곡은
비틀즈의 Hey Jude.
그는 마치 파고들듯
피아노 가까이 몸을 낮추고 연주를 하곤 했다.
그의 공연이 속삭인다.
음악을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제게 있어 음악이란
피아노의 건반 속으로 섬세하게 손을 집어넣어
그 속의 음을 집어내는 거예요.
모래밭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무리 파도 모래밖에 나오지 않을 거예요.
땅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파도 흙밖엔 나오질 않아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이 모래밖에, 흙밖에 손에 쥐지 못하는 그곳에서
풀들은 땅속 깊숙이 뿌리를 뻗어
초록의 맵시가 매끄럽게 흐르는 잎을 푸른 음처럼 길어올리고,
꽃들은 때로 붉은 꽃을, 또 노란 꽃을 색색의 음처럼 길어올려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들긴다고 다 음을 길어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많은 경우 모래나 흙밖에 손에 잡히질 않아요.
그럴 때는 음악이 아니라 우당탕쿵탕하는 소음만 손에 잡히고 말거예요.
하지만 음을 아는 섬세한 손을 가지면
그때부터 피아노의 건반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곳에서 음을 길어올릴 수 있어요.
작곡가들이 이미 그곳에 무수한 음의 씨를 뿌려놓았어요.
나의 손은 그 음들의 뿌리가 되어 피아노 건반의 속에서 음을 건져올려요.
지금 내가 연주하고 있는 곡은 Hey Jude예요.
아마 이 곡을 아는 사람들은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이 곡은 원래 그의 목소리에 얹혀 흐르던 노래로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니까요.
이게 바로 그 곡이예요.
하지만 음악의 세계에선 같은 씨앗에서
똑같은 색의 음을 길어올릴 필요가 없어요.
꽃들이 그렇잖아요.
같은 꽃인데도 종종 모양과 색을 달리하곤 해요.
지금의 내 곡도 그런 거예요.
난 지금 피아노의 건반 속에서 나만의 Hey Jude를 길어올리고 있어요.
그가 한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
몇 번 피아노 연주회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주 가까이서 연주자의 손놀림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때였다.
연주자의 손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 건반을 ‘즈려밟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호간의 연주에선
자꾸만 피아노 건반쪽으로 파고들듯 몸을 낮추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가 피아노 건반 속으로 손을 들이밀고
그곳에서 섬세하게 음을 골라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친절한 편이어서,
원래 그의 얼굴은 B석에서만 마주볼 수 있었지만
그는 가끔 얼굴을 들어 가운데로 돌려주었고
심지어 정반대로 돌려주기도 했다.
음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굴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친절도 음악 못지않게 중요하다.
피아노 연주만 계속 이어지는 콘서트는 아니다.
모비딕이란 이름의 밴드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모비딕 멤버들이
모두 같은 미장원에서 머리를 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협연은 함께 연주하는 것이지만
이번 콘서트에선 윤호간의 피아노가 Rock의 길을 열어주고,
Rock이 피아노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할머니의 다듬이 소리도 함께하여 피아노의 길을 열어주고,
피아노 또한 할머니의 다듬이 소리 앞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길을 열어주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김인순이라고 했다.
또 심지어 객석에서 찰칵거리는 카메라의 셔터 소음도
중간부터 그의 연주와 함께 했다.
소설가 조경란은 그림을 배우러 미술학원에 등록한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림을 배우려고 하느냐는 미술학원 선생의 질문에
조경란은 “혹시 그림이 소설의 길을 열어주지 않을까 해서요” 라고 답했다고 했다.
세상은 서로 다른 것들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듯 하지만
때로 그 다른 것들이 서로의 길을 열어주곤 한다.
때문에 협연한다는 것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서로서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함께 산다는 것도 알고 보면 혼자가다 막힌 길을 서로 열어주는 것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들을 때,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도
서로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에 일방적인 것은 별로 없다.
피아노가 열어준 Rock의 길에서
비틀즈, 딥퍼플, 퀸의 음악이 뜨겁게 타올랐다.
공연 중간에 지붕이 열렸다.
지붕이 열리자
공연자들이 적잖이 뻘쭘해 하는 눈치였다.
원래는 지붕이 열리면 레이저 쇼가 펼쳐져야 하는데
그게 없고 훤한 빛만 가득이었으니...
난 하도 더워서 실내 온도 조정하는 줄 알았다.
밤공연을 본 사람들은 색다른 체험 하나를 더 챙겨갔을 듯 싶다.
앵콜 공연 때, 난데없이
원더 걸스, 아니 언더 걸스 등장하셨다(아직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 중이니).
노바디 불러주고 들어갔다.
갑자기 피아노와 이빨이 아니라
피아노와 웬갖 잡탕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생이란게 그런 것인지 모른다.
온갖 잡탕으로 섞여 살아가는.
공연 끝나고 미리 구입해둔 CD에 사인받았다.
같이간 일행이 윤호간을 사이에 두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찍고 보니 그녀와 윤호간의 사이에서
뒷편 포스터 속의 그가 더 선명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원래는 초점이 나간 것이지만
그의 설명대로 하자면 앞쪽 사람들은 저음으로 처리하고
뒤쪽 포스터의 그를 고음으로 연주해본 촬영이었다.
후후, 난 역시 해석과 응용력 하나는 엄청 뛰어나다.
음악을 무슨 수로 글로 전하랴.
황동규 정도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윤호간은 아쉽게도 그의 취향도 아니다.
취향이 맞고 기회가 된다면
가서 직접 보고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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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ed from 내맘대로 다섯 2009/01/12 21:08 DELETE
Subject: 20070130 윤효간 콘서트 <피아노와 이빨>
나만의 삶을 연주하다 피아노 공연이라기에 처음엔 클래식 연주회를 상상했다. 연주회가 아닌 ‘콘서트’라기에 뉴에이지 혹은 재즈를 들려주나 했다. 아니다. 다 틀렸다. ‘피아노와 이빨’. 말 그대로 피아노와 ‘이빨’이 함께하는 공연. 도대체 어떤 피아노 공연이기에 2차, 3차 연장까지도 모자라 새해의 시작과 함께 또다시 그 쉼 없는 연주를 계속하고 있는 걸까. 대체 무엇이, 강추위가 몰아닥친 1월의 어느 평일 저녁 압구정 한구석의 조그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