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무척이나 바쁘게 보낸 것 같다. 상반기에는 원고를 많이 썼고, 후반기에는 밀로라드 파비치의 소설을 번역하며 보냈다. 번역은 내년에야 완성될 듯 싶다. 블로그 활동은 열심히 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SNS 매체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이동이 된 듯하다. 그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 편했다. 딸이 졸업하여 회사를 몇 달간 인턴으로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취직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으로도 블로그는 그냥 기록의 저장실 정도로 유지될 것 같다. 내년은 더욱 바빠질 것 같다. 올해의 사진 가운데서 열두 장을 골랐다.
1
눈이 오면 사람들이 복도에 발자국을 한 조각 흘리고 가는 일이 발생한다.
2
2월의 날씨는 쌀쌀했다. 하지만 오는 봄볕 또한 완연했다. 가을색의 철쭉잎이 잎을 혀처럼 뻗어 오는 봄볕을 맛보고 있었다. 나도 혓바닥을 내밀 뻔 했다. 이미 봄볕을 맛본 몇몇 철쭉잎은 색을 푸른 빛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렇게 철쭉이 일찌감치 마중하면서 봄이 온다.
3
때로 어떤 벚꽃은 부채춤을 준다
4
느티나무 밑에서 잎을 올려다 보았다. 푸른 하늘도 필요 없었고 꽃의 봄도 필요 없었다. 그냥 느티나무의 잎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5
비오는 날은 비를 맞아야 해. 완전히 흠뻑 뒤집어 쓰는 거지. 그러고 나면 보석처럼 빛날 수 있어. 프랑스 장미 몽파르나스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세계였으나 비맞은 몽파르나스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6
강변의 의자에 앉아 보내는 사람들의 휴식 시간은 실루엣이 되었다. 가끔 윤곽만 남기는 풍경이 보기에 좋다.
7
구름이 위세를 크게 떨친 하루였다. 세상이 온통 그늘이었다. 7월의 더위도 견딜만했다.
8
황새가 물위를 난다. 아직 황새의 그림자가 물속에 있다. 물이 그림자를 고집하면 그림자가 진하고 그 고집을 놓으면 그림자가 흐릿해진다. 황새는 높이를 높여 그림자를 건져갔다.
9
궁평항의 등대는 이상했다. 대개 등대는 불을 환하게 밝히는데 궁평항의 등대는 불을 은은하게 밝히며 분위기를 잡았다. 세상의 좌초된 사랑을 위한 등대 같았다.
10
빛에 물들면 꽃들은 물고기로 변신한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햇볕 속을 유명하며 뛰어논다.
11
색칠은 신갈나무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막 칠하는 것 같은데 잘 칠한다.
12
거의 완벽한 데칼코마니의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