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에 하루의 일정을 잡아 제천으로 여행을 갔다 왔다. 제천은 내 고향인 영월의 바로 옆동네이다. 어릴 때도 자주 갔던 곳이다. 영월에서 서울 갈 때 항상 거쳐가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곳으로의 여행이 특별할 수는 없다. 이번 하루 일정의 주목적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아는 감독이 출품한 작품이었다. 윤솔지 감독의 <없는 노래> 이다. 그런데 다녀오면서 새로운 일을 많이 겪었다. 일행 중의 한 명이 현저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이였던 점이 제천으로의 하루 여행을 새롭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핸드폰으로 예매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에 적응을 하며 살고 있었다. 내려가는 버스는 쉽게 예매를 했다. 그런데 제천에서 서울로 오는 시외버스는 예매가 되질 않았다. 영월도 되는데 왜 영월보다 더 큰 제천은 인터넷으로 예매가 안되냐고 투덜거리며 올라오는 교통편은 기차로 예매를 했다. 나중에 앞서 말한 젊은이에게 얘기를 했더니 <버스타고>라는 앱이 있는데 그걸로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시외버스 앱이 티머니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다. <버스타고>라는 앱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젊은이가 점심 먹을 곳 세 곳을 골라 보내주었다. 하나 골라서 가자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내려서 걷다가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낯선 곳을 찾았을 때의 즐거움 아닌가.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젊은이가 제천은 주말에 문여는 식당이 거의 없다고 했다. 내가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다. 젊은이가 알려준 식당까지 걸어가는데 정말 문연 곳이 그곳밖에 없었다. 미리 알아두지 않았다면 점심 찾아 삼만리를 할 뻔 했다. 나중에 보니 심지어 먹자골목이라는 표지판을 내건 곳에도 문연 곳이 없었다.
생전 처음 무인 카페란 곳을 들어가 보았다. 기계에서 차를 뽑아 마셨다. 저렴하기 이를데 없었다. 주인이 없으니 눈치 보지 않고 있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했더니 젊은이가 어디선가 주인이 모니터로 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카페안 천정의 한쪽 구석에 카메라가 달려 있기는 했다. 젊은이는 많이 들어가 보았는지 기계들이 좀 옛날 것이라고 했다. 내게는 모두 처음보는 것들이었다.
일행을 모두 만나고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의 일정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젊은이가 핸드폰을 꺼내 쏘카라는 것을 불렀다. 승용차를 빌려주는데 우리가 있는 곳까지 차를 가져다 주었다. 그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승용차를 몰고 배론성지란 곳을 다녀왔다. 렌트카는 들어봤지만 차를 아예 가져다주는 서비스는 처음이었다. 차의 문을 핸드폰 앱으로 열고 닫는 것도 내 눈에는 그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가 외지 사람들이 영화제 와서 먹을 곳 찾고 볼만한 곳을 찾는데 너무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영화제 측에서 그런 곳을 돌아다니는 셔틀 버스좀 운영하면 영화제에 대한 반응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했다. 7년 전에도 한 번 왔었는데 영화제 운영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고 했다. 영화제를 기획할 때 이 젊은이를 좀 데려다 썼으면 싶었다. 하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젊은이가 직장이 있어서 마음대로 데려다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제천역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집떠나서 내려왔는데 내려온 김에 기차역 풍경 정도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승강장으로 가는 통로에서 내려다보는 역의 밤풍경이 아주 좋았다. 조명이 아주 은은했다. 창을 열고 카메라를 내밀려고 했더니 역의 직원이 찍으면 안된다고 제지를 했다. 허가 받고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의 풍경이 좋아서 찍으려고 했다고 말하고 물러섰다. 가끔 서울역에 나가 사진을 찍는데 한번도 허가 받고 찍어야 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공항에서도 사진 찍는다고 제지를 당했던 적은 한번도 없는 듯하다. 제천역에서 처음 겪은 뜻밖의 경험이었다. 왜지,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올라올 때는 밤열차를 탔다. KTX 열차였다. 내가 여지껏 알고 있던 열차가 아니었다. 나는 철마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열차를 타고 다녔는데 역으로 들어온 열차는 내가 알고 있던 옛날의 그 철마가 아니었다. 열차는 빛의 뿔을 앞으로 내밀고 아주 세련된 모습으로 내 시선을 끌어가는 유니콘이었다.
같은 세상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젊은이랑 같이 다녔더니 하루 동안 다른 세상을 살 수 있었다. 제천의 하루를 아주 새롭게 돌아다니다 올라온 기분이다. 젊은이 곁에 붙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이유를 마다않고 시간을 내야 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같은 세상에 다른 삶이 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