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추석 때는 몇 시간 차를 몰아 추석날 전에 귀향을 하지만 나는 추석 당일날 거처를 나와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귀가를 했다. 지하철 타러 나갈 때의 시간이 너무 일러 아직 지하철역은 어둠에 둘러쌓여 있었다. 역의 전광판은 하남검단산 행이라고 되어 있는데 열차안의 전광판은 자꾸 화곡까지 간다고 했다. 열차가 출발하니 열차안의 행선지 표시도 하남검단산으로 정상이 되었다. 나 혼자 열차를 탄 느낌이었다.
동네에 도착했더니 항상 지나는 길에 보았던 호박 줄기가 호박꽃을 활짝 피워 놓고 있었다. 일찍 나오니 이런 것은 좋다. 호박꽃은 오후에는 꽃을 닫는다. 며칠 전에 집에 갔을 때 아파트 화단에 봤던 꽃무릇은 이제는 시들어 있었다. 담장의 담쟁이는 약간 단풍이 들어 있었다.
아침을 모두가 함께 먹었다. 딸도 달콤한 잠을 털고 일어나 아침 식탁에 함께 했다. 오래 간만에 가족이 한 자리에 앉았다. 흩어져 사니 추석에 모이는 즐거움이 있다. 그녀가 아침상 차리느라 고생했다.
아침 먹기 전에 낫을 갈아두었다. 벌초갈 생각이었다. 대개 추석 전에 가는데 올해는 추석 전에 비가 잦아 날짜를 잡지 못했다. 아버지 묘가 경기도 하남에 있다. 아침 먹고 우성아파트 앞에서 버스 타고 벌초 다녀왔다. 묘가 산 중턱에 있어 올라가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아마 모르는 사람에게 묘에 도착하기 직전의 풍경이 담긴 사진으로 보여주고 베트남 정글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무성하다. 점점 벌초를 오지 않는 집이 많아 지는 것 같다. 그래도 올라가고 벌초하는 것은 할만 했다.
하지만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산소 앞의 공간이 좁고 그 바로 앞이 비탈인데 그만 그 앞에 앉았다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져서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칡넝쿨이 받아주어 큰 부상은 없었지만 다시 기어올라오는데 아주 애를 먹었다. 더 큰 문제는 뒤로 넘어지면서 바지의 핸드폰이 빠진 것. 세 번을 비탈을 오르내리며 뒤져 봤지만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핸드폰 찾으러 다시 산소에 가야 한다고 했더니 그녀가 자신의 차로 태워다 주었다. 딸도 함께 나섰다. 둘은 밑에 있고 나만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산소에 도착해 전화했더니 바로 앞 비탈에서 전화음이 울린다. 하지만 보이진 않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 잎들을 헤쳤더니 핸드폰이 나타났다. 무사히 찾았다. 이제 벌초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누군가와 같이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길에서 밤 한 알과 도토리 두 알을 주웠다. 딸에게 할아버지가 너 갖다 주라고 하더라며 주었더니 다람쥐가 먹어야 하는데 이런 걸 왜 주워오냐고 잔소리다. 도토리 두 알과 밤 한 알이 없어서 다람쥐가 굶어죽을까 걱정하는 생각이 더 이상한 것 같았다. 도토리와 밤이 없어서 굶어죽을 다람쥐였으며 옛날에 더 굶어죽었을 것 같다. 옛날에 더 많이 주워갔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람쥐 먹이이니 도토리 줍지 말자는 캠페인도 좀 이상하다 싶다. 한두 알이 아니라면 그걸 누가 주워가겠나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뭐든 시장에서 사먹는 세상이니 집에서 먹겠다거나 묵을 하겠다고 그걸 주을 사람이 있어도 줄었으면 줄었지 늘어났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럴 때는 다람쥐 걱정보다 도토리 두 알과 밤 한 알에 담아주고 싶었던 아버지 마음을 살피는 철좀 들었으면 싶다. 대학 다니고 막 졸업했을 때는 철이 다 든 것 같더니 이제는 아이가 아버지가 무슨 말만 하면 배배꼬인 느낌이다. 사회 생활이 무서운 것 같다. 사람을 이상하게 바꾸어 놓는다. 그래도 지 먹을 건 알아서 해결하는 건 대견하기 이를데 없다.
그녀가 맥주 사놓은 것이 있어서 마셨다. 맥주를 마셨더니 술이 기분을 이완시켜 주었다. 자고 가라고 했으나 거처로 돌아왔다. 마신 맥주 때문에 공덕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러야 했다. 화장실에 들르면서 열차를 공항철도로 갈아탔다. 집에 가장 일찍가서 가장 늦게 돌아온 날이 되었다. 올해의 추석날, 9월 29일이었다. 크리스마스 때는 집에 가면 자고 올까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