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8일 우리 집에서
부직포 행주를 쓰고 있다. 물을 잘 빨아들이고 아주 얇다. 색은 여러가지이다. 하늘색, 연두색, 보라색에 노란색도 있다. 젖어있을 때 비틀면 아주 잘 짜지고 널어놓으면 마치 물기를 하나하나 골라내 말끔하게 버린듯 바삭하게 마른다. 그 부직포 행주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답이 될 줄은 몰랐다. 시인 서윤후가 그가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끔 주방 싱크대에 걸쳐 널어둔 부직포 행주 같은 것을 보며 사랑을 떠올린다. 깨끗한 순간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지만, 물기를 훔치고는 최선을 다해 비틀었다가 다시 말라가는 시간을 반복하는 것. 너에 대한 사랑은 끝나지만, 사랑 그 자체가 끝나지 않는 반복.
—서윤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지나 사랑을 지키는 일 – 작정하고 연애시 l 진은영 ‘사랑은’」(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48121.html )
부엌에 계란 삶는 용기가 하나 있다. 물을 살짝 채우고 거치대를 놓은 뒤 계란을 올려놓고 두껑을 닫은 다음에 다이얼을 돌려 시간을 맞추면 계란이 삶아진다. 계란을 삶는 것은 거의 그녀이다. 네 개를 삶아 자신이 두 개를 먹고 두 개는 내 몫으로 남긴다. 나이들면 단백질이 부족하다며 계란을 삶아 함께 나눠먹고 있다. 그녀가 거의 매일 반복하는 일이다.
삶고 나면 물이 용기에 남는다. 부직포 행주로 그 물을 빨아들여 없애고 깨끗이 닦는 것은 거의 항상 나이다. 나의 일도 거의 매일 반복된다. 시인에겐 부직포 행주가 사랑의 비유였지만 우리 집의 부엌에선 부직포 행주가 사랑의 실체이다. 우연히 읽게 된 시인의 글이 부엌에 배어 있는 사랑을 찾아줄 때도 있다. 오늘도 부엌에선 물에 잘 헹군 뒤에 비틀어서 물기를 없애고 걸어놓은 부직포 행주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잘 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