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안과 밖

Photo by Kim Dong Won
2025년 3월 17일 충북 청주의 내수성당에서

바깥에서 보면 짙고 어두운 색으로 밀봉된 창이었다. 안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안에서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창에 담겨 빛을 안고 빛나고 있었다. 때로 어떤 창은 안으로 들어야 비로소 그 창에 담긴 것이 보였다. 충북 청주에 있는 내수성당이었다.
창의 안에 들어 빛나는 그림을 보고 그 동네에 사는 아는 이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한 여자가 동행을 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뒤 돌아온 다음 날, 함께 사는 여자로부터 너는 어떻게 네 욕심대로만 사냐는 힐난의 말을 들었다.
내 욕심대로 살면서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았다. 아는 이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고 그 동네 사는 이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이어갔다. 집에 베링거 스피커가 있었다. 스피커가 베링거이면 음악을 듯는 맛이 달라진다. 딥 퍼플을 듣자고 하자 아는 이가 유튜브로 Smoke on the Water를 틀었고 우리는 음악이 왜 이래라며 불만스러워 했다. 유튜브로는 안된다며 내가 갖고 간 맥북을 꺼냈고 애플 뮤직을 띄운 뒤 스피커를 내 맥북으로 연결했다. 블루투스 기능을 갖고 있어 스피커를 내 맥북에 물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곧바로 음악이 달라졌다. 그렇게 음악을 바로 곁에 두고 떠들었으며 이야기는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떠들다가 음식이 놓인 술상을 그대로 두고 옆에 쓰러져 버린 잠이었다. 다른 방이 또 하나 있어 여자에겐 그 방이 할애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를 산책했다. 멀리서 노란 손짓을 보았다. 다가가니 손짓은 온데 간데 없고 산수유가 노란 꽃을 내밀었다. 작은 언덕을 넘어간 산길에선 봄까치꽃을 만났다. 꽃으로 오는 봄은 아직 완연하지 않은데 그 길에서 만난 봄까치꽃의 봄은 완연했다. 봄까치꽃이 핀 자리로 일찍 찾아 와서 꽃과 함께 하고 있는 완연한 봄을 보았다. 동네의 개울 옆을 지나다 개울 위를 지나는 다리에서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을 보았다. 떨어진 물방울은 수면에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작은 물방울이 그 속에 동그라미를 갖고 있다 끊임없이 물에 펼쳐놓는다. 딱딱한 바닥을 만났다면 얼룩의 운명으로 끝났을 것이다. 물을 만났기 때문에 그 안의 동그라미를 펼치는 시간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방울은 좋은 인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되었다. 그 생각이 물방울이 그리는 동그라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붙들었다. 성당의 뒤뜰에선 민들레는 만났다. 민들레는 흔한 꽃이지만 그것은 특별했다. 왜냐하면 올해 처음 만난 민들레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특별해질 때가 많다. 매년 우리는 그해의 처음으로 흔한 꽃도 얼마든지 특별하게 만날 수 있다. 민들레가 그 아침에 특별한 만남을 선물했다.
모두 성당 안에서 보았던 빛나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바깥에선 보이지 않으나 하룻밤을 머물며 보냈던 내 안에선 빛나는 그림처럼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들이었다.
묻게 된다. 성당 안의 그 그림이 성당의 욕심이었나. 때로 어떤 말은 듣고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 밀봉된 창처럼 여자와 함께 떠났다는 사실이 그 여행에서 내가 마주한 것들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곳이 성당이란 사실로 우리가 밀봉된 창의 안쪽을 의심하지 않듯이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나아가 더 중요한 점은 내가 그녀의 사랑이고 그 사랑을 믿는다면 바깥을 밀봉하고 있는 여자라는 존재로 내 여행을 어떤 불경스런 욕심으로 의심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욕심이라는 말이 나를 많이 슬프게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5년 3월 17일 충북 청주의 내수성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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