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의 사랑과 파경

가끔 베란다에 나가 바깥 풍경을 보곤 한다.
바깥 풍경이라고 해봤자
빼곡이 채워진 집과 아파트들 뿐이다.
그래도 시선을 좀더 높이 두면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날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베란다로 나가려다가
그곳에 항상 놓여있는 신발로부터
그들의 사랑과 파경에 관한 얘기를 전해듣게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7월 17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우리들의 사랑이 그렇듯이 신발의 사랑도
한쪽 신발이 다른 쪽 신발을 졸졸 쫓아다니며 시작되었다.
원래 다른 쪽 신발은 독신주의자였다.
독신주의자인 신발은 한쪽 신발이 결혼하자고 얘기하자
결혼이란 것이 외로움에 지쳐 함께 살려다가
생활의 힘겨움에 짓눌려 죽게 되는 비극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신발은 혼자 한쪽만 있으면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데
짝이 맞으면 냉큼 가져다 신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럼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람을 싣고 돌아다녀야 하는 생활의 힘겨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다른 쪽 신발은 자신은 그런 힘겨운 생활의 끝에서
결혼을 후회하는 쌍들을 무수히 보았다며
절대로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쪽 신발은 둘이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지 않겠냐며 끈질기게 다른 쪽 신발을 쫓아다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7월 17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결국 그리하여 그 두 신발은 코가 맞고 말았다.
코가 맞았다는 말이 좀 낯설기는 하겠지만
이는 신발 세상의 독특한 표현이다.
보통 사람들의 세상에선 이러한 말대신
눈이 맞았다거나 배가 맞았다는 말을 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7월 17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
신발의 결혼식 날, 주례가 물었다.

“두 신발은 신발 뒤축이 다 닳을 때까지
백년해로하며 서로를 사랑하겠습니까?”

두 신발은 모두 “예!”하고 우렁차게 대답했고,
둘은 누가 누구인지 잘 구별도 안가는 잘맞는 짝이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7월 17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한동안은 둘이 잘 지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항상 그렇듯이
결혼이 행복했던 순간으로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종종 이런저런 이유로 다툼이 있었고
심하게 다툰 날이면 헤어지자는 말이 아무런 제동없이 튀어나오곤 했다.

“우리 이제 헤어져.
우린 안맞아도 너무 안맞는 것 같아.
우리 이제 각자 제 갈길로 가.”

“그래, 좋다, 헤어지자.
그런데 다 좋은데 말야
우리가 헤어져 각자 제 갈길로 가면
우리 주인은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겠냐.
우리야 안맞아서 헤어진다고 치자.
근데 우리 주인은 도대체 무슨 죄냐.”

싸움은 번번히 그랬다.
당장 헤어질 듯이 싸웠지만
주인 때문에 그냥 참고 산다로 결론이 나면서
다툼은 마음에 상처를 남긴채 마무리되곤 했다.
둘은 그렇게 다투면서 화해하고 그러면서 계속 함께 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7월 17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그런데 그러다 정말 큰 일이 하나 터졌다.
신발 한쪽이 바람을 피운 것이다.
원래는 거실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비에 젖어 잠시 베란다로 나온 검정색 신발이 화근이었다.
몸을 말리는 사이에 베이지색 신발 한쪽이
그만 검정색 신발 한쪽과 코가 맞은 것이었다.
물론 주변의 모든 신발들이
둘의 사랑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며 말렸다.
아직 신발의 세계는 완고하기 이를데 없어
짝짝이 신발을 용납해주는 법이 없다며
빨리 헤어져서 원래의 짝들을 찾아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사랑에 눈먼 둘은 짝짝이 신발이라는
그 무시무시한 세상의 비난을 알고 있으면서도 물러날줄 몰랐다.
그들은 세상에 대고 외쳤다.

“인간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우리도 색깔에 관계없이 사랑하게 해주세요.
도대체 언제까지 같은 색깔, 같은 모양으로
맞춰 살아야 하는 거예요?
우리 제발 그냥 이대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7월 17일 우리 집 베란다에서

집으로 오면 바람난 신발 한쪽은
다른 쪽 신발로부터 어떻게 너가 그럴 수가 있냐는 비난에 시달렸지만
사랑에 눈먼 신발은 배째라고 나왔다.
결국 둘은 4주후의 조정 기간을 거친 뒤
결정을 내리기로 합의를 보았고
신발 주인은 그 4주 동안
신발 싸움에 발바닥이 터지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물론 바람난 신발은 그 4주 동안
짝짝이 신발이란 손가락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고
다시 흰색 신발에게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동성동본의 결혼을 허용한 경우가 있듯이
언젠가 짝짝이 신발의 사랑이 허용되는 세상이 올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2 thoughts on “신발의 사랑과 파경

  1. ㅍㅎㅎㅎ 정말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방송 작가나 CF 카피라이터들이 보면 샘 내면서 집어갈 내러티브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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