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욕먹은 공유기

Photo by Kim Dong Won
오른쪽이 억울하게 욕먹은 공유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집 전체의 네트웍이 이미 깔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회선도 넉넉하게 방마다 두 회선씩 들어가 있었다. 아주 쉽게 네트웍을 구성할 수 있었고 잘 썼다.
이제는 무선이 대세가 되었지만 무선은 편한 한편으로 다른 방에서 잘 잡히질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말해 무선 공유기가 설치된 방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잘되는데 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다른 방에서 잘 잡히지도 않고 속도도 뚝 떨어졌다. 그래도 이제는 무선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어 공유기 업계에서 조금 성능 좋기로 소문이 난 업체의 제품을 하나 구입하여 무선으로 넘어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안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쓰게 된 것도 계기가 되었다. 스마트폰은 와이파이가 없으면 그냥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예전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뜻하지 않게 얻은 소득이 있었다. 거실에 허브를 하나 놓고 그곳에서 선을 뽑아 내 방의 공유기로 가져온 뒤 인터넷을 분배하여 유선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와중에 거실의 허브에 선을 꽂기만 하면 꽂는 회선에 공공 IP가 할당된다는 사실이었다. 또 이상한 현상은 내 방에 있던 기존의 공유기에 꽂았는데도 건넌 방의 컴퓨터에 공공 IP가 할당이 되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기존의 공유기를 건넌 방에 주고 나는 내 방에서 새로운 공유기를 사용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하여 집안의 네트웍은 각방 무선이 구축되었다.
어쨌거나 각자의 방안에서 무선이 잘되었다. 각 방에서 각자의 아이폰을 무선으로 쓰면 되고, 거실에선 내 방의 무선이 잘 잡혔다. 아울러 유선이 들어가 있어 컴퓨터의 인터넷은 유선으로 빠르게 쓸 수 있었다. 한가지 불편한 사항은 각자 독립된 회선을 쓰다보니 더 이상 로컬 네트웍은 구성을 할 수가 없었다. 같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컴퓨터에 접속을 하려면 원격 로그인을 해야 했다. 할 수 없이 보안을 강화하여 평상시에는 파일 공유 기능을 꺼놓고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상대방이 파일 복사좀 할게 있다고 하면 그때만 공유 기능과 원격 로그인을 잠깐씩 허용해 주었다. 그러다 보안을 더욱 강화하여 ID 없으면 공유는 못하도록 바꾸었다.
한동안 별문제가 없었는데 전기가 나갔다가 들어오면 예전처럼 공유기가 자동으로 외부 IP를 받질 못했다.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거실의 허브를 껐다가 다시 켜고 그 다음에 내 방의 공유기를 껐다가 다시 켜고, 마지막으로 건넌 방의 공유기를 껐다가 다시 켜는 순서로 공공 IP를 받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것도 되질 않았다. 되긴 되는데 조금 쓰다보면 공유기가 멈추었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 공유기의 펌웨이를 업데이트한 것이 생각났다. 혹시 그것 때문인가 싶어 펌웨어를 옛날 것으로 다운그레이드했다. 그랬더니 예전처럼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슨 업그레이드를 이런 식으로 하냐고 공유기 욕을 왕창했다.
그리고는 기분좋게 바깥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나갔다 들어오니 공유기가 또 멈추어 있었다. 같은 증상의 반복이었다. 이번에는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방에는 두 개의 회선이 있는데 그 중의 한 회선은 건넌 방으로 연결된 회선이다. 그럼 나머지 한 회선을 무엇일까. 갑자기 그게 궁금해진 나는 그 회선을 내 컴퓨 터에 꽂아 보았다. 그건 공공 IP를 받을 수 있는 인터넷 회선이었고 내 컴퓨터는 그 회선을 꽂자 마자 공공 IP를 즉각 할애받고 있었다.
그 순간 결론이 났다. 원인도 대충 짐작이 갔다. 회선이 꼬인 것이었다. 내 방에도 허브가 하나 있는데 컴퓨터를 여러 대 쓰던 시절, 내가 포트가 부족하여 공유기에서 회선을 하나 빼서 연결해놓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허브가 공공 IP를 받아 건넌 방의 컴퓨터와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했는데 허브와 공유기를 연결해 놓으니까 공유기가 여기도 사설 IP를 할애를 해야 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헷갈릴 때마다 공유기가 멈추었다. 허브와 공유기 사이의 연결선을 뽑고 둘을 독립시켰다. 당연히 그 다음부터는 아무 문제없이 옛날처럼 각방에서 인터넷이 잘되었다. 공유기도 멈추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은 선이 꼬인 것이었다. 그런데 원인을 몰라 계속 공유기를 욕했다. 알고 나니 공유기 탓은 아니었다. 공유기 펌웨어도 다시 최신의 것으로 업데이트했다. 선을 엉뚱하게 꽂아서 난리 브루스를 쳐놓고 엄한데 욕을 했다. 좀 뻘쭘했다.

Photo by Kim Dong Won
허브는 이제 공공 IP 중계기가 되었다

2 thoughts on “억울하게 욕먹은 공유기

    1. 한 며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고생좀 하다가 겨우 해결을 했습니다. 잘 되네요. 이상있으면 주저말고 연락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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