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네와 늙네, 늙어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8월 1일 경기도 팔당의 다산공원에서

동생들이 놀러와서 함께 두물머리로 놀러 갔다.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공원은 어두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로 걸어가다 말고 막내가 한마디 한다. 아이구, 저기 가로등이 화나네. 졸지에 환하게 길을 밝혀주고 있던 가로등은 마구 화를 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도 화를 내지 않고 낄낄 거렸다. 가로등이 화날수록 세상이 환했다.

다산 공원 바로 인근에 능내역이 있다. 온 김에 들른다고 능내역에도 들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드문드문 주점에 앉아 한잔씩들 걸치고 있었다. 능내역은 불이 꺼져 있었다. 능내역 앞에서 막내가 또 한마디 했다. 오빠는 이 밤에 왜 우리를 여길 데려와서 아주 우리가 이 밤에 늙네, 늙어. 능내역에 가면 졸지에 빠르게 늙는 것이 아닌가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얘기를 들을 우리는 또 모두 함께 낄낄 거렸다. 오히려 조금 젊어진 것 같았다. 간만에 우리 집안 특유의 썰렁 유머를 마음껏 나누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8월 1일 경기도 팔당의 능내역에서

2 thoughts on “화나네와 늙네, 늙어

  1. 형제들만이 공유하는 추억의 유머 시리즈가 오랜만에 빛을 봤겠네요.
    그 오빠에 그 동생이었을 게 안 봐도 비디옵니다.ㅋㅋ

    1. 간만에 역시 형제들은 아무 얘길해도 눈치볼 필요가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 놀았죠. ㅋㅋ 홈플갔다 같이 온 초딩 2학년 딸이 선풍기가 너무 싸다고 해서 더 싼 것도 있는데 그건 손으로 직접 팬을 돌려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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