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찾아가 벚꽃을 만나고,
가을이면 또 찾아가 단풍을 만나는 아파트가 있다.
명일동의 삼익아파트이다.
80년대에 명일동과 맞붙은 상일동으로 이사를 왔었다.
사는 곳은 온통 논밭이었고,
논의 너머, 시선으로 가서 닿는 거리에 삼익아파트가 있었다.
동생이 그 아파트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논두렁 길을 걸어 아파트를 지나면 학교가 나왔다.
그 뒤로 논밭은 없어지고
이제는 이곳의 모든 빈자리가 아파트로 채워져 있다.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하고 있어
마치 약속해둔 것처럼 삼익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파트의 올가을은 봉쇄되어 있었다.
담장 너머로 봉쇄된 가을을 흘낏거리다 왔다.
매년 맞이하던 봄과 가을을 한군데 잃어버렸다.
봄과 가을은 낡을수록 좋은데,
가까운 곳의 좋은 계절을 둘이나 잃었다.
2 thoughts on “봉쇄된 가을”
명일동, 상일동에 그런 태고적 풍경이 있었군요. 하긴 저도 79년 10월에 어느 대학축제에 갔다가 파트너를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는데, 그 동네가 주위는 아직 개발 전이었던 명일동 아파트였더랬죠. 같은 서울이라도 제가 살던 용산과는 풍경이 많이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참, 그날이 26일이었는데, 그 저녁에 한 시대가 끝났죠.
지금은 아파트밖에 안보이는 곳이 되었지만 제가 이사왔을 때는 서울이라기보다 농촌에 가까웠었죠. 아득한 시절이 되어 버렸지만요. 그 시절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삼익아파트인데 이제는 헐리고 새로 들어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