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다 내려놓고 나무가 가지를 비웠다. 비운 자리로 파란 하늘이 촘촘하다. 이 비움은 도대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비움이 가지의 것이었다면 가지는 봄에는 잎의 자리를 내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겠지만 가을이 되었을 땐 잎을 모두 가지에서 내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잎에게 양해는 구했을 것이다. 겨울엔 파란 하늘에게 자리를 내주기로 약속했다고. 이 비움이 잎의 것이라면 잎은 봄이 왔을 때 가지에서 자리를 찾긴 했지만 가을이 되면 주저없이 그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떠날 때 내년 봄에 다시 오겠으니 하늘 이외에 다른 것에 자리를 내주지 말라는 말은 남겨놓았을 것이다. 이 비움이 계절의 것이라면 계절은 봄에 잎의 손을 잡고 가지를 찾아와 잎의 자리를 설득했겠지만 가을엔 또 가지에서 잎의 손을 잡고 떠남을 재촉했을 것이다. 떠나는 잎들의 뒤엔 겨울이 푸른 하늘의 손을 잡고 서 있었을 것이다. 가지가 채워지고 비는 현상은 하나지만 내 상상 속에서 그 현상은 무려 셋의 이름으로 오고 간다. 다 비운 자리에서 오고 감이 번잡하도록 가득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