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 프로2가 왔다. 애플 제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출시일에 제품을 받아보긴 또 처음이다. 출시일에 딱 맞추어 새벽에 배송되어 왔다. 내 처지로는 사서 쓰기 어려운 제품이다. 그래도 갖고 싶어 장기적으로 돈을 모을 궁리를 했었다. 그 궁리는 궁리로 끝났다. 동생이 사서 보냈다. 예약 첫날 예약을 해주었다. 오는 날이 정해져 있건만 이제오나 저제오나 기다렸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그냥 케이스 뚜껑을 연 것이 전부였다. 내가 사용하는 제품이 모두 애플 제품이어서 그런지 뚜껑을 여는 것으로 나의 모든 기기에 자동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냥 아이맥에서 에어팟을 선택하면 연결되고 기능도 체크하고 푸는 것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아이맥의 사운드 출력을 다른 것으로 바꾸고 아이폰에서 음악을 틀면 아이폰으로 연결이 바뀐다. 아이폰에선 설정에서 조정을 할 수 있다.
조금 걱정을 했었다. 내가 음악을 들을 때 트레블을 약간 올려서 듣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어팟은 이퀄라이저가 없다. 아이폰에서 미리 설정된 이퀄라이저를 이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섬세하게 조정이 안된다. 젠장할, 얘는 내 기호를 알고 있다. 손도 안댔는데 마치 내게 맞추어 조정된 듯한 음이 나온다.
귀에 꽂았을 때 너무 편하다. 귀에 낀 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음량 조절을 해봤다. 잘 안된다. 음량 조절은 그냥 아이폰이나 맥에서 하는게 편하다. 음은 환상적이다. 스피커로 듣는 것과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젠하이저의 블루투스 이어폰을 쓰고 있었다. 사실 좋았었고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쓰던 애플의 유선 이어폰과 달리 저음을 잘 살려주었다. 그런데도 그 동안 내가 들었던 음악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싶다. 슈어 이어폰이 궁금해진다. 슈어로 듣는 음은 도대체 어떨까.
에어팟의 음은 그냥 편안하다. 음악을 듣고 있는데, 그 음악이 락인 경우에도 음악이 아니라 무슨 파도나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음 느낌이 난다.
사람 만날 일이 있어 밖에 나가면서 에어팟 프로2를 귀에 꽂고 돌아다녔다. 에어팟 프로는 세상에서 음악만 남기고 소음을 제거해 버린다. 길은 걷는 사람들이 소리 없이 움직인다.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으면 열차가 소리없이 들어와 나를 태우고 조용히 길을 떠난다. 원래는 음악이 그 소리를 높여 세상의 소음과 힘겹게 맞서는 것이 그동안의 세상이었으나 이제는 이어폰이 세상의 소음을 아예 지워버린다. 노래와 노래 사이의 잠깐 사이마저도 소음이 간섭하지 못한다. 그 사이는 조용한 침묵의 차지가 된다. 지하철의 흔들림에 항상 동반되던 소음이 흔들림만 내게 남기고 시끄럽던 입을 굳게 다문다. 이어폰을 빼면 그 틈을 노리고 있던 소음이 일제히 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어폰을 터치하여 음악을 잠시 멈출 수 있지만 그건 그냥 아이폰이나 맥에서 하는게 편하다. 끼고 있는 동안 문자가 오면 누구에게서 이런 내용으로 문자가 왔다고 읽어주었다. 아이폰의 경우에는 멀어지면 음악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다시 아이폰 가까이 가면 슬그머니 음악이 돌아온다. 끼고 있다 아이폰을 두고 일어서면 아이폰을 잃어버리진 않겠다. 집안의 아이맥과 페어링이 되었을 때는 이 기능이 지원되지 않는다. 맥북과는 실험을 해보지 않았다. 상당히 재미난 기기다 싶다.
소음 제거와 주변음 허용 모드를 오가는 것도 재미나다. 주변음을 허용하면 주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소음 제거 모으로 옮겨가면 모든 소리들이 스르륵 사라진다. 음악이 켜져 있으면 주변음도 잘 들리질 않는다. 기본적인 차폐 기능이 잘 되어 있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음악을 잠시 멈추고 주변음을 허용하면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주변음이 아주 잘 들린다.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는 폐단이 있다. 편하고 음도 좋으니까 자꾸 끼고 음악을 듣게 된다. 음악이 마치 원산지에서 갓따서 그 자리에서 맛보는 과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