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4일 금요일은 세 곡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첫 노래는 <이름>이었다. 임정현이 불렀다. 내게 그는 항상 이소선합창단의 지휘자였지만 오늘 무대에 선 그는 성악가 임정현이었다. 그는 테너이다.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나는 대방동에 있는 서울여성플라자를 찾았다. 매일노동뉴스 창립 30주년 기념 행사가 그곳에서 있었고, 그의 노래가 행사를 축하할 예정이었지만 내게 그 행사는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내가 대방역으로 간 이유이기도 하다.
순서가 되었을 때 그가 <이름>을 불렀다. 노래는 “이름 하나 남아 가슴에 있네”로 시작된다. 그 이름은 노동자라는 이름이다. 그의 노래는 단순히 노래가 아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로 세상을 흔든다. 그가 세상을 흔들면 노래 속의 세상에선 노동자라는 이름이 “미래의 이름”이 되고 “누구의 이름도 아닌 모두의 이름”이 된다. 그가 흔들어놓으면 세상이 잠시 노래 속에서 바로 선다.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가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그가 노래로 세상을 뒤흔드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노래가 끝났을 때 사회자가 말했다. 노래 들으면서 울컥하지 않습니까? 객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모두가 울컥하며 목이 메인 때문이었다.
내가 들은 두 번째 노래는 최선이의 <민주>였다. 노래를 듣기 위해 대방역에서 일행과 함께 신촌의 연세대로 가기 위해 한강을 건너야 했다. 최선이는 이소선합창단의 소프라노이다. 노래는 기타 반주의 도움을 받았다. 기타는 이응구가 잡았다. 이응구는 이소선합창단의 테너이다. 내가 노래를 들은 자리는 제4회 연세민족민주동문 합동추모제의 자리였다. 연세대 출신인 민주 열사 28분의 영령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최선이의 노래에 실려 <민주>가 흐른다. 노래는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고 속삭인다. 노래는 또 “너는 불꽃 불꽃이었다”고 나직히 말한다. 노래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고 말한다. 가끔 노래는 죽음을 걷어낸다. 노래의 가장 큰 놀라움이기도 하다. 민주를 위해 살고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노래 속에서 일어나 햇살이 되고 불꽃이 되고 또 바람이 된다. 날은 저물어 있었지만 그래서 아마도 내일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맞는 햇살은 다를 것이다. 그것은 죽은 사람들이 일어나 우리 곁에서 함께 하는 빛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날은 가라 앉아 있었지만 우리는 따뜻함을 느낄 것이다. 이제 그들이 우리 곁의 불꽃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나는 바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 바람을 우리 안으로 들여 바람을 숨쉬게 될 것이다. 그 호흡 속에서 우리는 바람이 된 그들을 호흡한다. 노래가 죽음을 걷어내고 세상을 그들로 채운다.
최선이는 하나의 노래를 더 불렀다. <동지를 위하여> 였다. 동지들은 죽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노래는 죽은 자를 일으켜 우리 앞으로 불러온다.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라고 노래가 말할 때 우리는 살아서 우리 앞에 다시 선 그들을 만난다. 유가족 중 한 분이 노래가 흐르는 동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 눈물 속에서 죽은 자를 먼저 보낸 설움을 보았지만 동시에 노래가 흐를 때 우리 앞으로 다시온 그들을 만난 재회의 기쁨도 함께 보았다.
세 곡의 노래로 하루를 보냈다. 노동자의 세상이 서고 햇살과 불꽃, 바람으로 일어난 사람들이 노래와 함께 왔다. 그들과 함께 잠시 어두워진 신촌의 밤을 걸을 수 있는 날이었다. 노래가 모두 끝나고 신촌의 한 술집에서 왁자지껄 보낸 시간 속에서도 그들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