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채운 전태일의 빈자리 – 이소선합창단의 전태일 49주기 추도식 공연

Photo by Kim Dong Won
2019년 11월 13일 전태일 49주기 추도식
경기도 마석의 모란공원

2019년 11월 13일 수요일, 이소선합창단은 마석의 모란공원에서 있었던 전태일 열사 49주기 추도식에 참가했다. 날은 흐리고 쌀쌀했다. 나무들이 잎을 많이 털어낸 시기였으나 단풍의 시절이 모두 마감된 것은 아니었다. 불꽃처럼 붉은 단풍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이날 추도식의 노래는 사실 이소선합창단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추도식이 시작되기 전이었으나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을 무렵 전태일 열사의 흉상이 잘 내려다 보이는 나무에 자리를 잡고 직박구리가 노래를 불렀다. 잎을 털어낸 빈자리엔 직박구리의 노래가 채워졌다. 한 나무의 빈자리에 노래를 채운 직박구리는 다른 나무로 날아갔다.
직박구리가 잎을 비운 나무가지 사이에 노래를 채우고 간 뒤 추도식이 시작되었다. 49년전 전태일 열사는 죽었으나 그가 죽어 남은 빈자리는 수없이 많은 전태일로 채워졌다. 이소선합창단은 오늘 그의 자리를 노래로 채웠다.
합창단이 부른 노래는 세 곡이었다. 첫곡은 <영원한 노동자>였고, 두 번째 곡은 <전태일 추모가>였다. 그를 추모하여 모인 사람들 중에 올해는 유난히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오래 전의 그를 추모하고 있었으나 그의 곁은 이제 이 땅의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이 헌화를 할 때 합창단은 <그날을 오면>을 불렀다. 아직 온전히 그날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전태일의 이름으로 그날이 가까워졌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행사 중에 몇 방울의 비가 내렸고, 행사가 모두 마무리되었을 때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새와 합창단의 노래로 채워졌던 세상에 빗줄기가 날렸다. 뜨거웠을 그 날의 몸을 식혀주어야 한다는 하늘의 뜻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빗줄기를 아무 불만없이 받아들였다. 불꽃을 식히는 빗줄기 속에서 불꽃이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날이기도 했다. 아직 잎을 붙들고 있는 붉은 단풍의 잎이 꺼지지 않은 불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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