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2년 11월 25일 금요일 서울대병원 파업 집회에 참가했다. 집회는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있었다. 집회가 시작되었을 때, 시간은 오후의 중간쯤인 3시로 접어들고 있었다.
병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병원 건물의 벽에 붙어 있는 구호들을 보았다. 구호들은 “의료공공성이 건강입니다” “민영화 반대 공공성 확대” “필수인력 충원으로 환자안전 지켜내자!”고 외치고 있었다. 모두가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외치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곳에선 조금 다르다. 병원노조가 부당한 세상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벽들이 병원노조의 또다른 입이 되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외친다. 벽들이 노동자와 연대한다.
집회 장소에선 나무들이 피켓을 몸에 걸고 서 있었다. 병원노조의 파업에 대한 지지의사가 그 피켓에 담겨 있었다. 각종 단체에서 보낸 것이다. 하지만 내겐 그 모든 지지에 이곳에 서 있는 나무들이 다시 나무들의 지지를 보탠 것으로 보였다. 나무도 노동자와 연대한다.
합창단의 노래는 소프라노 최선이가 부른 <민주>로 시작되었다. 노래는 민주를 ‘너’라고 칭하며 그 너가 햇살이자 불꽃, 바람이라고 알려주었다. 서쪽으로 몸을 기울인 오후의 햇살이 환했다. 병원 노조 사람들이 투쟁을 외칠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 이는 불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주먹쥐고 흔드는 손에서도 불꽃의 흔들림이 보였다. 바람이 노래부르는 최선이의 머리카락을 자주 흩어놓고 있었다. 때로 온세상이 노동자의 싸움에 함께 한다.
최선이의 노래 <민주>에 이어 이소선합창단은 두 곡의 노래를 불러 병원 노조의 파업에 지지를 표했다. 두 곡의 노래는 <진군의 노래>와 <해방을 향한 진군>이었다. 노래 두 곡으로 이어진 진군이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바람이 위잉 소리를 내며 불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증폭되면서 노래와 뒤섞였다. 합창단이 총파업 전선으로 나서는 노동자의 진군을 노래할 때 그 진군의 가장 앞자리에 선 것은 바람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앉아 있었으나 바람이 사람들의 뜻을 안고 진군하고 있었다.
이날 밤, 서울대병원이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 햇살이 아주 환했다. 아침의 바람은 마치 사람들의 보폭에 맞춘 듯 가볍게 불고 있었다. 어제 집회 노동자들의 마음에서 엿보았던 불꽃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햇살과 바람, 그리고 불꽃의 세상이었다. 살만한 세상의 아침을 노동자의 싸움이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