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체험 – 이소선합창단의 명동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 지지공연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1월 12일 명동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 지지공연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이소선합창단은 2023년 1월 12일 목요일 명동에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집회는 매주 목요일 이들이 해고된 세종호텔의 앞에서 열리고 있다. 10년에 이르고 있다는 이 집회는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집회에 그치지 않는다. 집회에 참석하면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세상이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 착각의 세상에선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된다.
그러나 명동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집회에선 그렇질 않다. 집회의 준비는 전봇대에 노동자의 투쟁문화제를 알리는 펼침막을 거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아주 큰 전환을 이룬다. 펼침막을 거는 순간 이제 오늘 전봇대의 가로등이 밝히는 것은 밤길이 아니다. 가로등은 오늘만큼은 그 빛을 노동자에게 할애한다. 그리하여 노동자가 제대로 대우받아야할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밝힌다.
이 날은 한끼의 식사로 노동자와 연대하는 밥통이 와서 함께 했다. 이른 시간에 집회에 나온 사람은 음식을 열심히 젓고 있는 이소선합창단의 베이스 김우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간단해 보이는 노동이 음식이 눌어붙지 않도록 해준다. 식판에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담는 배식도 여러 명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밥과 소시지를 비롯한 네 가지의 반찬, 배추 된장국, 그리고 호박죽이 집회에 참석하러온 사람들에게 건네졌다. 소시지를 제외하면 채식주의자도 먹을 수 있는 배려까지 그 음식에 담겨있었다.
어디 그 현장의 노동 뿐이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노동은 끊임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싣고 이곳까지 온 것도 노동이다. 우리는 돈의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노동의 밥을 먹는다. 이 날 밥통이 제공한 밥에는 노동이 제대로 대접하는 세상을 함께 열어가려는 연대의 마음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 그 밥을 먹으면 노동의 소중한 가치에 눈뜨지 않을 수 없다.
집회에 앉아 있는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세종호텔이 그 호텔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증언한다. 5성을 자랑하는 명동의 호텔은 30년 동안 설거지를 한 그 호텔 노동자의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노동은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식기에서 30년을 반짝거렸다. 눈이 밝은 사람은 그 식기에서 분명 그의 반짝이는 노동을 봤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노동으로 호텔을 이룬 노동자가 느닷없이 영어 시험을 본 끝에 쫓겨났다고 한다. 노동자가 억울한 것은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해고가 노동으로 이룬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삶을 부정당한 사람은 누구도 참을 수가 없다. 호텔을 이룬 것이 노동이란 것을 안다면 그 노동을 함부로 쫓아낼 수는 없다. 돈에 눈이 먼 자본가는 그 노동의 가치를 보질 못한다. 우리는 집회에서 호텔을 이룬 노동을 만나고 그 노동에 대한 자본의 부당한 횡포를 동시에 만난다.
노동자와 연대한 이소선합창단의 노래는 소프라노 최선이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합창단의 테너 이응구가 기타 반주로 노래를 도왔다. 나는 최선이에게 어떻게 연습을 하냐고 물었다. 합창단에서 마련한 연습실에 나가 지휘자 임정현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사를 외우고 도움을 줄 때 지휘자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혼자 연습하기도 한다고 했다. 가령 지휘자는 걸으면서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한다. 가만히 노래만 부르면 노래가 굳는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굳지 않는다고 했다. 노래도 그냥오지 않는다. 연습으로 다듬어져 노동자들과 연대한다. 최선이는 <전태일 민중의 나라>를 불렀다. 노래는 그 나라가 “노동의 깃발 드높이 드높이 높이 솟아 맞이하”는 민중의 나라라고 말한다. 노동의 가치가 돈보다 우선시되는 나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소선합창단은 또 어떤가. 합창단은 매주 수요일 연습실에 모여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연습으로 노래는 다듬어지고 노래가 다듬어질 때 밥통의 밥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함께 열려는 연대의 마음이 실린다.
합창단은 두 곡의 노래를 불렀고, 한 곡의 앵콜곡을 그 뒤에 이었다. 두 곡의 노래는 <영원한 노동자>와 <다시 또 다시> 였으며, 앵콜은 <천리길>로 받았다. 노래가 “우리 손으로 아름다운 세상 우리 노동으로 푸르른 대지”라고 말한다. 노래가 세상이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린다. 또 노래가 말한다. “밟혀도 다시 일어서라 솟구쳐 일어서라”라고. 노래를 듣던 노동자 몇몇이 노래의 리듬에 맞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노래와 함께 노동을 부당하게 대하는 자본 앞에서 노동자가 주먹을 쥐고 일어선다. 그리고 그 세상을 위해 모두가 함께 천리길을 달렸다. “내 땅에 내가” 가는 천리길이었다. 그 길에선 노동자의 땅을 노동자들이 가고 있었다.
세상에선 돈이 인간을 앞서며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있지만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의 집회에선 밥과 집회에 모인 노동자, 그리고 합창단의 노래까지 모든 것이 노동으로 수렴되었다. 세상은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집회는 밥통에서 마련한 밥을 먹으며, 싸우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그들과 연대한 노래를 들으며 하는 노동 세상의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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