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갈 결심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4월 7일 우리 집에서
파일 서버로 사용되고 있는 아이맥.
집에서 항상 돌아가고 있다.

헤어질 결심은 못하고 대신 집나갈 결심을 했다. 집나가서 내가 살아보려고 한 삶은 어디를 가나 몸하나 누일 작은 공간만 마련되면 그곳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작업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물론 인터넷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게는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집에서 27인치 모니터 두 대를 펼쳐놓고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걸 15인치 노트북에서 해결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더구나 집의 컴퓨터에는 수많은 저장장치들이 달려 있다. 오랫동안 찍어온 사진들과 글쓰는데 필요한 자료들이 그 저장 장치들에 들어 있다. 그걸 모두 들고 돌아다닐 수는 없다.
가장 시급한 것은 들고 다닐 수 있는 노트북이었다. 맥북을 하나 샀다. 최신의 모델이 탐이 났지만 비싸서 중고로 샀다. 2019년 모델이었다. 크기는 16인치이다. 이 모델에는 애플의 최신 맥오에스인 벤추라가 깔린다. 이 벤추라에는 스테이지 매니저라는 아주 유용한 기능이 있다. 작은 화면에서 조직적으로 일을 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기능이다. 나보고 집나가도 된다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어디를 가나 인터넷을 통해 집의 컴퓨터에 자유롭게 접속하여 집의 자료를 마치 집에 있을 때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파일 서버를 구축해야 했다. 원래 맥은 이 기능을 기본으로 갖고 있다. 그 기능을 켜면 그 순간 맥은 파일 서버가 된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이 기능이 인터넷 상에선 안되게끔 막혔다. 되긴 되는데 로컬 네트웍, 즉 내부 네트웍에서만 되고 인터넷을 통해서는 안되게 변한 것이다. 때문에 이를 위해선 옛날 맥이 필요했다. 그래서 맥북 2013년 모델을 30만원을 주고 하나 샀다. 실험을 해봤더니 인터넷을 통해 접속할 수 있는 파일 서버로 쓰려면 시스템을 상당히 옛날 것을 설치해야 했다. 그리하여 맥북에는 요세미티가 설치되었다. 실험해보니 잘 되었다. 하지만 보안을 위해 애플 파일 서버만 켜놓고 삼바 서버는 막아 버렸다. 말하자면 윈도 컴퓨터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베트남의 다낭으로 여행을 가면서 맥북을 들고 갔다. 호텔에서 접속해보니 한국의 내 집구석에 있는 서버로 아주 잘 접속이 되었다. 낮에는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사진찍고 저녁 때는 호텔방에서 그 사진에 텍스트를 붙여 인터넷으로 올리는 작업을 했다. 아주 잘되었다. 다만 베트남은 인터넷 속도가 그다지 빠르질 않아 사진 작업은 그냥 맥북 내에서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 집을 나왔다. 한국의 인터넷은 정말 빠르다. 집에서 작업할 때만큼 빠르진 않았지만 거의 불편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집의 맥북에 접속이 안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집의 인터넷은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컴퓨터에 접속이 안되는 것이었다. 집에 가봤다. 집의 고양이가 메인 스위치를 밟아서 인터넷 공유기의 전원이 나간 것이었다. 다시는 못밟도록 스위치 위에 덮개를 덮었다.
그리고 파일 서버를 아이맥으로 교체를 했다. 아이맥이 있는데 왜 맥북을 샀을까 그게 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도 가끔 실수를 한다. 아이맥은 강력한 사양을 자랑하는 컴퓨터였다. 메모리가 32기가이다. 다만 내장 하드가 500기라는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아이맥으로 서버를 바꾸자 그 엄청난 성능 때문에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문제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속도도 더욱 만족스러워 졌다.
그래도 다시 한번 집에 가야 했다. 집에서 정전 사태가 있었는데 그 뒤로 사진 하드 하나가 들어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가보고 많이 허무했다. 전원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하드 중 하나는 스위치가 한번 누르면 켜지고 또 한번 누르면 꺼지는 방식이었는데 집안에서 그걸 스위치인 줄 몰랐다. 가는 김에 어쩌다 IP 번호가 바뀌어도 접속할 수 있게끔 DNS 서버에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하나 깔았다. 그리고 저장 장치들도 정비를 했다. 집에서 작업하니 속도 하나는 빨랐다.
나는 맥북 하나만 있고 몸누일 공간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가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집나와서 일도 했다. 돈버는 일을 말함이다. 지난 해부터 매달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집에 있을 때와 똑같이 일이 되었다. 다만 작업 형태가 많이 달라졌다. 작은 화면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상당히 많았다. 속도는 집에 있을 때만큼 빠르진 않았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작업해보니 바깥의 맥북에서 집의 아이맥 저장장치로 1기가 복사하는데 1분 정도 걸린다. 집에 가서 해보니 10초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작업은 맥북에서 일단하고 최종 작업물은 시간이 한가할 때 집의 저장장치로 복사하고 있다.
나는 집을 나왔다. 그러나 나의 아이맥은 여전히 집에서 돌아가며 내 요청에 따라 필요한 파일들을 내게로 보낸다. 나는 집에 있기도 하는 셈이다. 돌아다니진 않고 거처를 구해 그곳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 글쓰는 자에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매일 체감하고 있다. 이 자유를 맥북과 인터넷이 크게 돕고 있다. 둘은 내게 시대가 너를 자유롭게 할지니 이 시대를 자유롭게 살라한다. 내가 그렇게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4월 7일 나의 거처에서
어디를 가나 나와 함께 하는 맥북.
어디를 가나 집에 접속해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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