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자리와 난자리 2

Photo by Kim Dong Won
양평 사나사에서

그 자리는 원래 비어 있는 자리였다.
그때만 해도 그 자리에 대해선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러다 그 자리는 잠자리가 앉으면서 잠자리의 자리가 되었다.
잠자리는 잠시 그 자리를 채우고 휴식을 취했다.
잠자리는 얼마 안있어 다시 그 자리를 비우고 날아가 버렸다.
원래 비어있을 때는 빈줄 몰랐는데
잠자리가 채웠다가 비우니
갑자기 그 자리가 비어보였다.
그러고 보면 비었다라는 것은
빈 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아닌 셈이다.
원래부터 빈 것은 빈 느낌마저 없다.
비었다는 느낌은 채웠다가 비웠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온다.
채웠다가 사라지면 그 자리엔 다시 빈자리가 남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채웠던 것에 대한 기억이 남는다.
그 기억이 바로 우리가 갖게 되는 빈자리의 느낌이다.
그 기억이 없으면
빈자리는 아무 느낌도 없다.
그러고 보면 잠자리의 기억으로 채워진 빈자리는
아무 느낌도 없는 빈자리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것은 비어있으면서 채워져 있는 자리이다.
빈자리는 그러므로 비어서 서글픈 자리가 아니라
기억으로 채워져 소중한 자리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양평 사나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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