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로 호흡한 이국의 시간 —채인숙 시집 『여름 가고 여름』

Photo by Kim Dong Won
⟪포지션⟫ 2023년 여름호의 글이 실린 면

채인숙은 인도네시아에서 산다. 비행기로 날아가도 7시간이 걸리는 머나 먼 이국이다. 유럽이나 미국이 더 멀지 않냐고 의문을 표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더 멀긴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은 가보지 않고도 마치 가본 듯이 익숙한 곳이다. 인도네시아는 낯설다. 익숙함으로 따지면 유럽과 미국은 가깝고 인도네시아는 크게 멀어진다. 내가 멀다고 말했을 때의 거리감엔 그 낯섬이 포함된다.
문제는 머나 먼 이국이 시인의 호흡에 큰 어려움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언어로 호흡하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언어는 태어나고 자란 지역과 질기게 묶인다. 우리는 그 언어를 모국어라고 부른다. 어머니만 우리는 낳고 기르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도 우리를 기르는데 큰 역할을 하며 시인은 모국어의 손에 의탁해 자라는 성향이 더욱 강하다. 나이가 차면 어머니의 손을 떠나 독립하는 것은 가능하나 모국어에 대한 의존성은 반대로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국은 언어의 호흡에 있어 곤란을 심하게 겪을 수 있는 살기 힘든 땅이 되고 만다.
채인숙 시집 『여름 가고 여름』을 들추면 시인의 자서에서 그가 겪은 두 가지 어려움을 만난다. 하나는 ‘8000일’이란 수치가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하루가 하루를 단위로 계속 분절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는 365일, 혹은 366일을 다 채우고 나면 마치 눈처럼 뭉쳐져 한 해가 된다. 눈이 내리기 좋은 겨울에 한 해가 시작되어 다시 눈이 내리기 적당한 겨울에 마감이 되는 계절의 흐름 또한 하루를 눈처럼 뭉쳐 한 해로 뭉뚱그리기 좋게 해준다. 그러나 채인숙이 산 인도네시아에선 하루가 아무리 흘러도 한 해로 뭉쳐지질 않는다. 왜 인도네시아라고 하루가 한 해로 뭉쳐지지 않으랴.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모국어를 따로 가진 이방인이다. 그는 어머니 곁을 떠나 따로 살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으나 동시에 어머니를 잃은 어린 아이가 된다. 그가 시인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아이가 보내는 하루는 한 해로 뭉쳐지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모국에 있었으면 22년 정도로 뭉쳐져 흘렀을 날들이 8000일로 흩어져 뭉쳐지지 않는다.
자서에서 또 하나 인도네시아를 산 그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말은 ‘병’이다. 그 말의 앞뒤를 읽어보면 “사람을 만나면 차가워지고/혼자 남았을 때는 지나치게 뜨거운/병을 얻었다”고 되어 있다. 병을 앓았다는 뜻은 아니다. 대개는 그 반대이나 나는 이 말을 이국의 땅이 사람 사이를 건조하게 만들고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뜨겁게 만들었다고 읽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모국어가 사라진 이국의 땅에선 그 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까지 모든 것이 경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때로 낯선 땅에서의 삶은 한동안 삶이라기보다 병이 된다.
이제 나는 궁금해진다. 도대체 뭉쳐지지 않는 8000일의 날들과 병처럼 앓아야 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낸 것일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이 멈추는 법은 없다는 사실에 의탁해 삶을 방치하는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흐를 때 우리의 삶도 함께 흐른다. 시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삶이 아무런 감동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에
번번이 놀란다
—「여름 가고 여름」 부분

그러나 시인이 그런 사실에 “번번이 놀란다”는 것은 그 사실을 주기적으로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주기적인 자각은 시간에 맡기는 삶의 방치가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삶을 계속 시간의 흐름에 맡겨 방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시인에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비록 고국을 떠나기는 했지만 시인에겐 고국에 대한 기억이 있다. 시집에 실린 시의 상당수가 그 기억으로 보인다. 가령 삼천포는 그의 고향이다. 얼마나 익숙한 곳이랴. 기억은 아무리 먼 이국이라도 얼마든지 그곳으로 소환할 수 있다.

항구 안쪽에는 쥐포를 말리는 공장들이 전범 수용소처럼 높은 벽을 두르고 서 있었다 겨울이면 수용소 담벼락 안 어둔 마당으로 쥐똥만 한 햇살들이 부지런히 굴러다녔다
—「삼천포」 부분

이 기억은 아주 오래된 기억으로 보인다. 오래된 기억은 또 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잔속으로 얼룩진 생”을 살았던 “내 할머니 김말수”의 기억 또한 오래 전의 것으로 생각된다. 잔속이란 그리 대수롭지 아니한 일로 걱정하게 되는 마음을 말한다. 나는 아주 오랜 기억마저도 이국의 시간 속으로 소환되었다고 생각했다.

구순을 넘기자 내 할머니 김말수는 절로 귀신이 되었다
—「마지막 장마」 부분

좀 더 가까운 기억으로는 그의 대학 시절이 있다. 그 기억은 년도가 표기되어 있다. 그가 인도네시아로 떠난 것이 1999년이라고 하니 그때를 기준으로 하면 10년전의 기억이다.

대학 도서관에서 가끔 책을 훔쳤다
바코드니 전자출입증 따위는 없던 호시절이었다
—「1989」 부분

삼천포 사람이지만 북아현에서도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곳이 고향처럼 그리운 곳은 아니었다.

떠나왔어도 한 번도 그리운 적 없었던 북아현. 먼먼 그 여름은 언제나 길었고 사는 건 날마다 비명이었네.
—「북아현」 부분

시인에겐 “좁고 더러운 계단이 집집마다 놓여 있어 계단 끝을 오르면 선로를 탈출한 문장들이 소실점을 잃고 떠다니는 기찻길을 어느 창문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는 동네가 북아현이다. 고국에 있었다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을 동네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국의 땅에선 그곳의 기억마저 소환된다. 그는 고국의 기억으로 모국어를 호흡하며 이국을 견딘다.
기억은 잠시 우리를 견딜 수 있게 해주지만 그러나 기억은 동시에 부재의 확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억으로 견디면서 그것의 현실이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을 동시에 확인한다. 때문에 기억으로 현재를 견디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인가 가까운 곳에서 오늘의 이곳을 견딜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때로 같은 운명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말하자면 인도네시아를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또다른 사람이다.

화란의 말을 잊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편지를 쓰지 못했다
—「네덜란드 인 묘지」 부분

이제는 기도조차 모국어로 하지 않는다고
—「금요일 —샤리파 리 혹은 이민전」 부분

시속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모국어를 잊을 정도로 오랫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 어떤 운명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종종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그러나 위안은 위안일 뿐이다. 그것은 잠시 우리를 달래주긴 하지만 우리를 채워주진 못한다. 시인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고국이다.
그러므로 가장 확실하게 시인이 자신의 호흡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고국을 다녀가는 것이다. 그러면 하루하루로 분절된 채 한 해로 뭉쳐지지 않는 시간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삶의 갈증이 곧바로 해갈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수월했으면 시간이 8000일로 분절되어 있었을리 없다. 시간을 뭉칠 수 있을만큼 고국을 자주 다녀갈 수 있다면 이미 이국도 이국이 아니다. 날들이 해로 뭉쳐지지 못한 것을 보면 시인에게 그런 혜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데도 시인은 고국을 다녀갈 수 있다. 그 방법은 아주 독특하다.

가장 단순한 기도를 바치기 위해
맨발의 여자들이 회색의 화산재를 밟으며
사라진 사원을 오른다
—「디엥 고원」 부분

시인이 간 곳은 고국이 아니라 디엥 고원이다. 디엥 고원은 열대의 인도네시아에 자리하고 있지만 해발 2,000m 높이에 자리하고 있어 날씨가 서늘한 곳이다. 아마도 기도하는 여자들이 많이 찾는가 보다. 시는 그곳의 고원을 맨발로 오르며 기도를 올리는 여자들을 전하고 있지만 시인은 그 여인들의 모습을 본 날 “나는 오늘도 기도가 남았다”고 했다. 시에 전혀 언급은 없지만 나는 아마도 그 여인들을 볼 때 시인이 자식의 안녕을 빌며 정안수를 떠놓고 기도를 올렸다던 이땅의 옛 어머니들을 겹쳐보며 그 새벽을 다녀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다녀가는 시인의 고국이다.
시 「디엥 고원」에서 시인이 다녀가는 고국은 내 짐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떤 시에선 아주 구체적이다.

우물 옆에 목련 나무가 서 있는 집에 오래 살았다
—「옛집의 언정」 부분

그런데 시인은 같은 시에서 “모든 거리의 이름들이 경음으로 시작되는 자바 섬 동쪽에서 옛집과 마주쳤다”고 말한다. 고국의 옛집을 다녀갔지만 사실은 인도네시아에서 다녀간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그 집은 목련을 가진 집도 아니었다. 실제로는 “목련 대신 하얀 깜보자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는 마당”을 가진 집이었다. 하지만 “키가 낮은 우물”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 집은 시인의 옛집으로 시인을 데려가기에 충분해진다. 고국을 다녀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예는 또 있다.

자바에선 비누를 사분이라 부른다
어릴 적 내 고향에서도 비누를 사분이라 불렀다
사분을 사분이라 부를 때마다 통영 앞바다 섬들이 비누 모양으로 둥둥 떠오른다
—「레이디 D」 부분

인터넷을 뒤져 사분을 검색한 나는 비슷한 경험의 증언을 만난다. 오랫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일했던 김정훈이란 사람의 경험이었다. 그는 숙소의 직원이 건네준 인도네시아어 학습서에 비누가 sabun이라고 써 있었다며 경상도 말로 비누가 사분이어서 갑자기 친근감을 느끼며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http://dailyindonesia.co.kr/news/view.php?no=18714). 시인은 그 정도를 넘어선다. 친근감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중첩된 말을 징검다리 삼아 순식간에 바다를 건너고 “통영 앞바다”에 이른다.
이국의 풍경과 말 속에서 고국을 다녀가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고국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현지의 한국인은 아니다. 같은 한국인이라고 똑같이 이국을 앓고 있을리가 없다. 같은 병을 공유하고 있어야 마음도 나눌 수 있다.

어둠의 극장에는 일찍 늙어 버린 배우들이 모여 도망자들을 위한 연극을 만든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북동의 식민지에서 왔다던 청년의 이야기를 한다 어린 아내를 두고 온 그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생각하느라 밤새 울었다고 그러다 잠자리를 밀고당한 것이라고 수용소를 탈출한 그를 찾아 병사들이 그림자 극을 공연하던 와양 극장을 덮쳤다고 그건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고 청년은 화란인의 빨래를 다려 주는 여인의 사랑을 거절했다고
—「그리운 바타이아」 부분

시인은 오늘의 자카르타를 살지만 그 자카르타에서 와양이라 불리는 그림자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인도네시아가 독립 전쟁을 벌이던 시절의 자카르타 이름인 바타이아로 거슬러 오른다. 그 과거에는 조선인 청년이 있다. 때문에 시속에서 “북동의 식민지”는 인도네시아의 북동쪽에 있던 일제 식민지 시절의 조선이다. “북동의 식민지에서 왔다던 청년”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네덜란드군에 잡혀 처형된 전북 완주 출신의 양칠성이다. 시인은 인도네시아에서 그림자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인도네시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 그 과거의 시간 속에서 나라를 잃고 이국에서 죽었던 식민지 청년과 조우한다. 때로 오래 전 한 청년이 이국에 남긴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언어의 호흡이 어려워진 시인을 이국에서 견딜 수 있게 한다.
나는 시인이 이국을 견딘 또다른 방법 중의 하나를 계절을 고국의 방식으로 편재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이렇게 나타난다.

여름 가고 여름 온다
—「여름 가고 여름」 부분

인도네시아는 열대 지방이다. 시인에 의하면 그곳은 계절이 “한 번도 표정을 바꾸지 않”(「부조」)는 곳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여름을 가고 오는 여름의 두 계절로 나눈다. 때문에 여름밖에 없는 나라의 여름이 여름과 여름의 두 계절로 분화되어 가고 온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살았던 몸이 모국을 잊지 못할 때 여름만 있는 나라의 계절이 여름이 가고 오는 것으로 분화되어 잠시 모국의 언어에 실린다. “계절이 바뀐다는 건 어떤 것일까”를 “끝내 알 수 없었”(「네덜란드 인 묘지」)던 나라에서 그는 모국의 언어로 계절을 나누고 그렇게 분화된 계절을 통해 모국을 호흡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국은 이국이다. 어떻게 다녀가도 고국을 다녀가는 방식으로는 그곳을 오래도록 견딜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보자면 그곳을 사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이국을 호흡하는 것이다. 나는 채인숙이 바로 그 호흡에 이르렇다 생각한다.

인도양의 저녁 해가
은빛 가루를 뿌리며
구원의 기도문을
써 내려갔다
—「해변의 모스크」 부분

우리는 시가 말하는 “구원의 기도문”이 모스크가 있는 이국의 어느 해변에서 바라본 노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 노을은 한국의 노을이 아니다. 바로 인도네시아의 노을이다. 나는 시인이 그 노을을 “구원의 기도문”으로 옮겨갈 때 드디어 모국어로 이국을 호흡했다 생각한다. 그가 이국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쓰여진 인도네시아 시편들이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난 자가 이국을 견뎌낼 때 여러가지 것들이 그의 호흡을 도왔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그의 호흡이 되어 삶을 지켜준 것은 모국어로 호흡한 이국이었다. 그가 드디어 이국을 살 수 있는 호흡법을 모국어로 체득한 것이기도 하다.
채인숙이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맥주잔을 사이에 놓고 그의 얼굴을 봤다. 시집이 나오기 며칠 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출국했다. 떠나면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만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출국」 부분

우리는 이제 알게 된다. 그가 말한 “만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그에겐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의 사랑이 여전히 이 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때 “세월이 주는 모멸을 견디는 것이” (「금요일 —샤리파 리 혹은 이민전」)삶이었던 곳에서 항상 접하며 보고 만나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사랑을 그가 모국어로 호흡하는 이국의 시간들로 확인한다. 그는 이제 두 가지의 사랑을 갖게 되었다.
떠날 때의 그는 “당신이 잠든 사이/나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출국했다. 그가 여전히 사랑을 고국에만 두고 떠났다면 그를 보낸 우리의 잠도 편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에겐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도 모국어로 호흡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 우리는 그가 고국을 다녀가는 잠깐의 다음 시간을 기다리며 편히 잠잘 것이다. 그가 모국어의 호흡으로 살고 사랑하는 또다른 이국의 시간이다.
(⟪포지션⟫ 2023년 여름호)
(대상 시집: 채인숙,『여름 가고 여름』, 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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