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허공의 영혼 — 송재학의 시 「공중」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1월 13일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에서
곤줄박이

시인 송재학은 그의 시 「공중」에서 이렇게 말한다.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란 가끔 연약하구나
—송재학, 「공중」 부분

시인이 손바닥에 올려놓은 것은 창가로 날아와 앉은 곤줄박이 한 마리, 즉 새 한 마리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새를 허공이라 칭하기 시작한다. 그 허공은 시인이 “색이 없다고 믿었”고 ‘빈 곳’이라 생각했던 공간이다. 시인이 새를 허공이라 칭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가 허공에서 날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대상을 대상이 나온 곳으로 지칭하는 이러한 언어 습관을 갖고 있다. 가령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출전하여 경기를 하면 선수는 선수 개인을 너머 그냥 대한민국이 되어 버릴 때가 많다. 미국 사람은 미국이 되는 경우가 흔하며 영국 사람은 그냥 영국이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때로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으로 환치되곤 한다.
하지만 새가 허공에서 날아왔다고 새를 허공으로 지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그 사람의 출신 지역으로 지칭하는 습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공중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두기 때문이다. 너가 어디 공중에서 뚝 떨어진 줄 아느냐는 힐난은 사람을 그의 출신 지역이나 부모에게 귀속시키면서 공중을 지역이나 부모에 대한 대립적 요소로 사용하고 있는 좋은 예이다. 그 언어 습관이 공중에는 적용이 되질 않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언어 습관으로 보면 새를 새가 날아온 허공으로 환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면서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시란 우리가 갖는 언어 습관의 한계를 넘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 시의 경우에는 새를 눈앞에 두고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 예외가 되어 있는 허공, 즉 공중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시인은 새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

회색 깃털과 더불어 목덜미와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 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송재학, 「공중」 부분

또 이상하다. 새를 관찰한 뒤 그 새를 영혼이라고 말하고 새의 색이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영혼이란 새가 허공의 영혼이란 뜻으로 읽힌다. 이 또한 우리의 지역이 곧 우리 자신이 되는 언어 습관에서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암암리에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의 지역에 만들어낸 영혼들이다. 바로 그 때문에 아무 것도 없는 듯한 공중이 새의 실체가 되고 새는 그 허공의 영혼이 될 수 있다. 새를 영혼으로 가진 허공은 새로 호흡한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샛과 곤줄박이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송재학, 「공중」 부분

시인의 판단에 의하면 허공은 ‘쥐수염 붓’을 가졌다. 쥐수염 붓은 가장 으뜸으로 치는 좋은 붓이다. 허공이 그 영혼으로 새를 그려낸 것을 보면 좋은 붓을 가졌다는 짐작이 간다는 얘기로 들린다. 반면 새의 붓은 갈필이다. 갈필은 칡뿌리로 만든 붓을 말하는 것으로 거칠고 질이 낮은 붓이다. 새가 그려가는 삶이 새를 그려낸 허공에는 미칠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좋은 붓으로 뛰어난 영혼을 그려낸 허공은 그 새를 통해 호흡한다. 새는 허공의 호흡이다. 새가 있어 비로소 허공이 숨쉰다. 하지만 그 얘기는 허공이 숨쉴 때 공중으로 비로소 새가 날고 쉰다는 얘기도 된다. 우리는 공중을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인에겐 그 공중의 허공이 있어 세상의 모든 새들이 있다.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송재학, 「공중」 부분

시인의 미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언어 습관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언어 습관이 갖는 한계를 넘어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색깔을 손에 잡을 수 있게 한다. 베란다에 나가 허공 한 줌 움켜쥐고 어떤 색깔이 손바닥에 묻어나는지 봐야 겠다.
(2023년 10월 2일)
(인용한 시는 송재학 시집 『검은색』, 문학과지성사, 2015에 실려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