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의 소프라노 최선이의 노래를 들었다. 날은 2023년 11월 3일 금요일이었고, 장소는 연세대학교의 원두우 신학관 예배실이었다. 연세민족민주동문 합동추모제의 자리였으며 올해가 다섯 번째라고 했다. 연세대 출신의 민주 열사 31분에 대해 그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비오는 가을날이었다. 떨어져 거리를 뒹구는 잎들이 많았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 계절의 풍경으로 완연해진다. 그러나 해가 저무는 시간에 사람들은 기억을 오늘에 불러내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삼았다.
최선이의 첫 노래는 <기도>였다.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이다. 노래는 “눈을 감고 잠잠히 기도드리라”는 말로 시작된다. 오늘의 자리에서 기도는 곧 기억이다. 한때 이땅의 민주를 위해 싸우다 생을 달리한 분들에 대한 기억은 곧 기도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노래는 한편으로 그 기도가 금방 현실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려준다. 1절이 끝날 때 “애처로운 인생”이라 우리의 삶을 말하며 “애꿎은 노래만” 운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래는 신비로워 우리의 애처로운 현실을 말할 때도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노래가 된 기도는 그냥 그것이 힘이 되든 안되든 우리에게는 기도 자체가 큰 위로라고 말해준다. 실제로 우리에게 31분의 민주 열사가 있다는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기도의 힘을 얻는다.
2절은 사뭇다르다. “멍에는 괴롭고 짐은 무거워도 두드리던 문은 네게 열릴지니”라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는 그리하여 결국은 기도가 “그대 영혼 감싸리”라고 매듭짓는다. <기도>를 노래할 때 최선이의 뒤에 31분의 민주 열사 얼굴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노래의 바로 뒤에 그날의 기도가 된 기억이 현재가 되어 자리하고 있었다.
최선이가 부른 두 번째 노래는 <동지를 위하여> 였다. 노래를 부르자 이미 세상뜬 동지가 과거의 시간을 뿌리치고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가 된다. 그렇게 과거를 현재로 살려내는 것이 기억의 힘일 것이며, 기억의 힘은 놀라워서 오늘에 불러낸 과거가 “새여명의 눈빛으로,” 또 “터진 물줄기로” “해방의 거리”로 몰려나간다. 그 기억으로 서면 비오는 가을밤의 거리는 모두 해방의 거리가 된다.
추모제 였지만 참석한 분들이 앵콜을 외쳤다. 앵콜은 노래를 통해 더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였다. 최선이가 부른 앵콜곡은 <벗이여 해방이 온다> 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동지를 위하여>를 부를 때 이미 거리에 해방이 왔다는 것을. <벗이여 해방이 온다>는 거리에 온 그 해방이 어떤 해방인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날’의 시간에 맞추어 오는 그 해방은 “자유의 넋으로 살” 수 있는 세상으로 오며, 물결마저 해방으로 춤을 세상으로 온다. 노래가 “벗이며 새날이 온다 벗이며 해방이 온다”고 자꾸자꾸 말한다. 그때면 누구나 해방이 우리의 세상을 새롭게 열어준다고 자꾸자꾸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미 우리 곁에 왔어도 자꾸자꾸 노래하고 싶을 것이다.
노래는 기억을 기도로 삼았고, 그 기억의 힘으로 동지가 우리 곁에 함께 하는 현재로 살아났다. 동지가 현재로 살아나자 저무는 한 해의 거리에 온통 해방이었다. 잠시 최선이의 노래 세 곡으로 함께 한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