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비닐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월 10일 단독 시절의 우리 집에서

그 집의 화장실은 동쪽으로 커다란 창 하나를 두고 있었다. 아침이면 그 창으로 빛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와 화장실에 유난히 밝은 아침이 가득했다. 그 집의 아주 좋은 점이었다. 하지만 겨울이 문제였다. 낡은 창의 틈새를 비집고 겨울 바람이 마치 집안도 집밖인듯 들어오곤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겨울마다 집의 여자가 찬바람을 막으라며 화장실 창문에 비닐을 쳤다. 그녀는 비닐을 팽팽하게 당겨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바람을 단단히 막으라 일러두었지만 며칠이 못가 비닐은 느슨하게 긴장을 풀더니 급기야 바람과 바람이 나고 말았다. 바람을 막으랬더니 오히려 바람의 아이를 배고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집안 사람들에게 배를 내밀었다. 좀 괘씸하긴 했지만 아직은 바깥 바람이 차니 바깥으로 내쫓기도 그러했다. 집안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봄까지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하지만 따뜻한 봄이 오고 몸을 풀면 그때쯤엔 바깥으로 쫓아낼 생각이었다. 봄기운이 따뜻해져 쫓아내도 얼어죽지는 않을 때쯤 되었을 때, 그래, 그 차가운 겨울 바람이 그렇게 좋디? 어디, 나가서 그 놈의 바람과 함께 실컷 살아봐라, 그렇게 잔소리를 잊지 않고 챙겨 바깥으로 쫓아낼 생각이었다. 올봄, 길거리를 나뒹구는 커다란 비닐 한장 있다면, 올겨울 그집 화장실에서 바람과 바람난 바로 그 비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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