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구호품이 배달되어 온다. UN문학기구에서 보내는 구호품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런 기구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내게 구호품을 보내는 것을 보면 그런 명칭의 기구가 분명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좋은 글을 쓰기도 전에 굶어죽으면 인류 문화의 차원에서 큰 손실이라 생각하고 보내주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구호품은 과도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많이 오고 있다. 어떨 때는 구호품으로 1년은 살 수 있지 않겠나 싶어지기도 한다. 대개는 먹을 것이다. 때문에 구호품이 오면 유통기한 순서로 먹어야 한다. 유통기한이 짧은 밀키트가 그 순서에서 앞쪽 차례를 점하게 된다. 이번에 온 구호품 가운데서 가장 먼저 뜯은 것이 소고기 전골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조리법은 따로 찾지 않아도 된다. 상자에 다 적혀 있기 때문이다. 소고기의 핏물을 빼고 양념으로 버무린 뒤 그냥 상자에 있는 것을 다 때려넣고 끓이라고 되어 있다. 2인분이라고 되어 있어 두 번에 나눠 먹으려고 그릇에 덜었는데 먹다 보니 한 번에 다 먹어 버렸다. 혼자 먹었는데 누군가와 함께 먹은 기분이었다. 혼자 살 때는 2인분의 식품이 혼자를 지우고 둘의 기분을 만들어준다.
구호품을 받고는 혼자 사는 거처에서 전혀 먹지 않던 것을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삼겹살이 그랬다. 절대로 사올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식품이었다. 그런데 한 근이나 왔다. 한 근을 한 번에 모두 먹어치울 수는 없어서 일단 고기를 적은 양으로 나누어 각각의 봉지에 담고 냉동실에 넣었다. 그리고 두 줄만 구웠다. 고추장을 소스로 삼고 김치를 곁들이면서 함께 온 상추에 싸서 먹었다. 고기라서 그런지 두 줄인데도 혼자에겐 벅차다. 먹고 나니 한끼를 먹은 것이 아니라 내일 끼니까지 모두 먹어치운 기분이 들었다.
잘못 배달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혹시 뭐가 그리로 가지 않았냐고 묻는 전화가 온다. 그렇다고 해도 반품해 달라는 얘기는 없다. 그냥 잘 먹으라는 얘기로 전화가 마무리되고 만다.
과자가 아예 커다란 박스에 담겨 따로 올 때도 있다. 과자를 이렇게 많이 보내는 것을 보면 내 마음 속에 어린 아이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궁핍하긴 하지만 가끔 오는 UN문학기구의 구호품으로 뜻하지 않는 풍요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