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와서 살다보니 음식을 해 먹게 되고, 음식을 해 먹으려니 이런저런 음식 재료들을 사게 된다. 그 음식 재료들은 그것으로 감당하는 시간으로 환치되곤 한다.
가령 고추장은 작은 통에 든 고추장 두 개가 1년을 감당해준다. 이번에 두 개를 샀으니 이 두 개로 올해를 날 수 있다.
계란은 20개가 든 박스로 하나를 구입하면 그 속의 계란이 한 달 동안 야금야금 호출되어 그때그때 배를 채워준다. 처음에는 전자렌지에 돌려 계란 프라이를 해먹는 재미에 계란을 많이 먹었는데 이제는 좀 시들해졌다.
김치는 두 봉지가 한달을 감당해준다. 김치의 경우에는 입맛에 맞는 제품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제일 싼 제품으로 골랐다가 비비고, 종가집을 거쳐 최근에 드디어 이남김치에 정착했다. 지금까지 사먹어본 어떤 김치도 내 입맛에 맞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이남김치는 내 입맛에 딱 맞는다. 처음 이 김치를 먹었을 때, 지금까지 내가 먹은 김치가 모두 다 이북 김치인 건가 했었다.
물은 한 달에 여섯 개짜리 팩 하나를 먹는 것 같다. 생각보다 물을 적게 먹는 느낌이다.
맥주는 많이 마실 것 같은데 냉장고 하단의 한칸을 점유하고 있는 맥주는 지난 해 자리를 차지했지만 해를 넘기고도 그대로이다. 한 달에 한 번 정기 행사로 월초에 8개짜리 한 팩의 맥주를 사오곤 했지만 지난 달과 이 달에는 그것도 건너뛰었다. 맥주는 월초에 사온 8개짜리 맥주에 세일할 때 구입한 호가든이 몇 캔을 거들면서 한달의 시간을 흘려보내주곤 했었다.
음식 재료의 감당 기간이 대략적으로도 짚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삼겹살이 그렇다. 한줄씩 비닐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두었는데 인스턴트 김치찌개에 넣어 먹었더니 아주 맛이 좋았다. 처음 구입해본 것이어서 언제까지 갈지 알 수가 없다.
혼자 사니 내가 먹으려고 장만해둔 음식 재료들이 그것으로 감당할 시간이 된다. 내가 음식의 시간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