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의 어느 남자 이야기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4월 22일 서울 홍대거리에서

남자의 걸음은 항상 그 창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갔다. 창은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동시에 그 창은 아득하도록 먼, 갈 수 없는 세상이었다. 창속에 누가 사는가가 궁금하다고 그 창을 두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게다가 창은 가게 위쪽으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높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손에 닿는 높이라고 해도 창을 두드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창을 호위하듯 감싼 벽이 그가 내주고 싶은 마음을 창 앞에서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항상 닫힌 창과 벽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그 곳을 지나치곤 했다.
어느 날, 그림 그리는 사람이 붓과 물감을 들고 그 창 앞에 섰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마다 않고 그가 그 집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끝냈을 때 남자가 그 창의 방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남자의 멈춘 걸음 앞에 놓여있던 닫혀진 창과 막힌 벽이 더 이상 남자를 가로막지 않았다. 닫혀진 창과 막힌 벽 앞에서 멈추었다 가곤 했던 남자가 그 집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림의 남자는 아, 너의 방에서 세상을 내다보면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 구나 하며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은 방에서 세상을 내다보는 그의 눈이 되었고, 벽에선 그의 표정이 비쳤다.
닫히고 막혀 있던 세상이 알 수 없는 사람이 내준 창 하나로 푸르고 높게 열렸다. 그때부터 남자는 그 집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출 때마다 잠시 그 집에 사는 누군가의 마음에 든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 몸과 걸음을 막는 벽이 있다고 해도 마음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내준 길이었다. 걸음을 멈출 때마다 남자는 기분이 좋아졌고, 그렇게 웃다가 그만 입이 눈을 찌를 정도로 찢어지고 말았다. 찢어진 웃음이 벽으로 옮겨갔다. 그 웃음은 남자의 것이었고 벽의 남자가 곧 그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표정으로 그 벽에 살게 되었다. 한쪽 안경에 언제나 구름 많은 푸른 하늘이 가득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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