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성심당에서 빵을 샀다. 빵가게에서 빵을 사는 일은 별일은 아닐 것이나 성심당에서 빵을 사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묵었던 숙소에서 성심당까지 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려서 맑은 날보다는 줄이 짧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도착해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딸과 나는 빵을 파는 곳에, 그녀는 케이크를 파는 곳에 줄을 섰다.
줄의 끝을 찾는 것이 일이었다.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골목의 건너편에 길게 늘어선 줄이 또 있었고, 그곳이 끝인가 싶으면 또다시 이어진 줄이 줄을 이리저리 휘면서 이어져 있었다. 줄의 끝을 찾고 그 끝에 선 뒤 한걸음한걸음 줄을 줄여가며 빵가게의 매장 입구로 가야 했다. 1시간이 걸렸다. 그녀가 선 케이크 가게의 줄에선 그 시간이 두 시간으로 늘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때문에 케이크의 인기가 치솟은 탓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좀 놀랐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지루함이나 짜증을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혼자 온 사람들은 드물었고 대부분은 일행이 있었다. 일행들이 얘기를 나누며 그 긴 줄의 기다림을 모두 즐겁게 감내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빵맛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 보였다. 인기높은 연예인의 팬 사인회에서나 볼 수 있는 즐거운 기다림이었다. 빵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 목적인 듯도 보였다.
나는 트레이를 들고 딸의 뒤를 쫓아다니기만 했다. 엄청난 빵을 담았고, 모두 샀다.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차속에서 빵냄새가 진동했다. 묵었던 숙소 가까이 갑천이 있어 아침에 산책을 했었다. 나무들이 많았고, 백로와 왜가리도 만난 산책길이었다. 하지만 대전의 모든 기억은 성심당의 줄에 밀려 지워져 버리고 성심당의 줄만 기억에 남았다. 강렬한 체험의 줄이었다. 빵을 산 뒤 어딘가에 들러 대전 구경을 더할 계획이었으나 빵을 사고 한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은 것으로 대전의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성심당의 줄이 대전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렸다고 말했지만 사실 성심당으로 가는 동안 길가에 거의 숲을 이루며 늘어선 나무들을 보면서 대전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대전을 떠올릴 때면 항상 그 기억의 처음은 성심당 앞에서 길게 늘어서 있던 줄로 시작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