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잘 동네 산책에 나선다. 산책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때그때 마음이 기웃거리는 방향을 따라 길을 바꾸곤 한다. 어느 집의 창가에 놓인 화분이 그 걸음을 붙잡을 때도 있고, 잎들 사이로 보일 듯 말듯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감꽃이 시선을 수직의 각도로 세워 한참 동안 위로 끌어가기도 한다. 어제는 산책이 마무리될 때쯤 눈앞으로 저녁 하늘이 동네의 집들 위로 걸려 있었다. 붉은 기운을 살짝 내비치는 하늘이 밑둥이 그 하늘이 저녁 하늘임을 일려준다. 조금 더 걸으면 저녁은 또 지금의 자리를 비우면서 뒤로 밀려날 것이다. 저녁은 우리의 저녁을 채우면서 점점 더 뒤로 걸음을 물린다. 걸음이 저녁을 뒤로 미는 골목길을 걸어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