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동막해수욕장 바닷가에서 구미호를 앞에 두고 구미호를 마셨다. 앞의 구미호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고, 마신 구미호는 아주 맛난 맥주이다. 이 맥주를 파는 곳이 아주 드물다. 내가 물었다. 나의 간도 빼먹을 거야? 구미호가 말했다. 구미호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의 간을 빼먹지 않아. 간을 빼먹으려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거든. 간을 빼먹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게 됐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법이야. 대신 사람을 사랑하게 된 구미호는 그 사람의 마음을 빼먹어.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구미호가 더 이상 구미호가 아니게 되지. 사랑은 국경만 넘어서는 게 아니다. 사랑은 종도 넘어서게 만들어준다. 한 번 빼먹으면 더 이상 재생이 되지 않는 간과 달리 마음은 샘솟듯 끊임없이 재생이 되었다. 마음은 평생 내줄 수 있다. 마음을 먹고 사는 구미호가 마음 깊숙이 손을 넣어 내 마음을 꺼냈다. 바닷 바람이 지나가다 짭조롬하게 간을 맞춰주는 바닷가였다. 구미호가 입맛을 다셨다. 간보다 맛난 마음의 맛을 알아차린 구미호였다. 구미호에게 마음을 내주고 나는 구미호 맥주를 마셨다. 웬만한 수제맥주 못지 않게 맛있는 IPA 맥주였다. 나는 구미호에게 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