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중일은 그의 시 「장미가 지자 장맛비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가 잃어버린 우산처럼 익숙한 골목의 낯선 장미 담장에 혼자 기대어 있다.
—김중일, 「장미가 지자 장맛비가」 부분
사랑과 이별하면 익숙한 골목도 낯설어진다. 시 속에 시인이 이별했다는 직접적인 얘기는 없다. 그러나 나는 시인의 사랑이 깨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장미를 네게 보여줄지 선물할지 보여주고 선물할지 보여주고 돌아설지 고민하는 동안 장미는 나에 대한 당신의 마음이 되고 나는 꽃잎을 의심하며 떼어낸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 아닌 나에 의해 한잎 한잎 순식간에 뒤바뀌며 사라져간다”는 구절 때문이었다. 시인은 장미를 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왔으나 연인을 불러내 그 장미를 전하지 못한다. 둘 사이에 금이 갔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골목”이라고 했으니 자주 찾은 골목이다. 그러니 골목에서 사실 달라진 것은 없다. 결국은 둘이 그동안 골목의 느낌을 바꾸었다는 얘기가 된다. 둘은 그 골목에 익숙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할 때 둘이 채운 그 골목의 느낌에 익숙해진다. 사랑할 때는 그 사실을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사랑을 하다 이별을 했다고 하여 세상 자체가 바뀌는 법은 없다. 그러나 사랑과 이별의 이후로 세상에 대한 느낌은 크게 변한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상의 느낌을 산다. 사랑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별이 닥치고 서야 그 둘이 확연하게 구별이 된다.
비가 내리는 날, “익숙한 골목의 낯선 장미 담장”에서 자신이 마치 “누가 잃어버린 우산”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건 사랑했다 이별한 것이며, 그것이 이별했을 때 우리들이 갖게 되는 골목의 느낌이다. 그러나 가장 슬플 때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아니라 골목에서 그런 느낌마저 지워져 버렸을 때이다. 우리는 이별하면 둘 사이에 남겨진 모든 느낌을 지우려 하지만 사실은 그 느낌마저 지워졌을 때가 가장 슬플 때이다. 낯선 이별의 느낌으로 남아있을 때 비록 슬프긴 해도 사랑은 여전히 그 골목에 있다. 사랑이 지워지고 나면 골목에는 어떤 느낌도 남지 않는다. 이별 뒤에도 여전히 골목에 사랑이 있다.
(2015년 6월 20일)
(인용한 시는 김중일 시집, 『내가 살아갈 사람』, 창비, 2015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