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가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지우는 날이 있다. 이런 날엔 살아있다는 것이 경계가 선명하여 경계 너머로 넘어갈 수가 없는 때이고 죽는다는 건 그 경계가 지워져 자유롭게 두 세상을 넘나들 수 있는 날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죽음이란 운무 같은 것이다. 있는 경계를 지워 우리의 생각이 경계 너머를 꿈꾸게 해준다. 그러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뀐다. 죽음을 가까이에 둔 사람들이 죽음을 멀리 둔 사람들과 달리 생각의 경계를 지우면서 다른 세상을 여는 경우를 가끔 본다. 세상을 지우는 것 같은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