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좋다. 햇볕이 늦가을의 거실을 깊숙이 파고 든다. 몸을 맡기면 온기가 투명한 체온처럼 우리를 감싼다. 여름이라면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좋다는 느낌은 늦가을에나 가능하다. 여름 햇볕은 강하다. 창을 열어 바람을 불러들이고 그 뜨거움을 달래야 곁에 둘 수 있다. 아니, 그래도 곁에 둘 수 없어 결국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여름이었다. 계절은 햇볕을 누그러 뜨린다. 불같은 성질 다 죽인 노년처럼 가을 햇볕이 거실에 깊숙하다. 햇볕이 매해 한 해를 살고 죽는다. 곧 죽음이 온다. 태어나 막 온기를 갖추던 봄날의 체온으로 햇볕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