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항을 지나 바닷가로 난 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음하다 보면
그 길을 들어서자 마자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이
잠시 머물다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바로 길옆까지 와서 넘실댑니다.
눈앞의 크고 작은 바위섬들은 바다와 부딪치며
끊임없이 하얀 포말을 만들어냅니다.
배들은 푸른 빛으로 일렁이는 화폭을
길게 선을 하나 그으며 지나갑니다.
처음 걸음을 멈추면 그 바다와 거의 눈높이를 같이 하지만
그 길옆엔 거진 해맞이 동산이란 이름의 작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12월 19일, 우리는 바닷가에서 걸음을 멈춘 뒤
그 산위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시선이 높이와 거리를 버리면
바다 곁으로 가까이 할 수 있어 친밀감을 얻게 되고,
시선이 높이를 얻으면 거리는 멀어지지만
한눈에 바다가 들어오면서 느낌이 아주 시원해 집니다.
해맞이 동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중간쯤 높이가
내 시선에 안겨준 풍경입니다.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동산으로 다 올라가니 해안도로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옵니다.
도로 가까운 곳의 바다는 속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습니다.
역시 동해가 맑긴 맑습니다.
그녀 말로는 겨울 바다는 더 맑다고 하더군요.
동산의 길은 여기저기로 뻗어있습니다.
이 길로 가면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명태 기념비가 있다고 하더군요.
나무 몇그루가 길의 끝에서 우리에게 어서오라고 손짓했지만
우리는 이 길로 가질 않고
오른쪽의 등대가 보이는 길로 슬쩍 샜습니다.
등대 앞쪽의 작은 쉼터에 이르자 다시 바다가 보입니다.
좀전에 오른쪽으로 두었던 바위섬이
이제는 왼쪽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위섬의 한쪽 귀퉁이에선 바다가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둥글게 둥글게 그려내는 그 원을 한참 동안 구경합니다.
거진 등대입니다.
사람이 없는 무인 등대라고 합니다.
물론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냥 눈으로 겉만 한번 훑어보고 지나갑니다.
거진항의 모습입니다.
속초항에서 올라오며 지나치는 대부분의 항이
자그만한데 거진항은 속초항 만큼이나 크더군요.
항구를 하나하나 들리면서 여행하는 편인데
거진항은 그냥 지나치고,
바로 그 위의 바닷가에서 걸음을 멈춘 뒤,
지나친 그 항을 동산 위에서 내려다보게 된 셈입니다.
다시 동산에 난 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원래 동산으로 올라오던 길을 지나쳐 더 위로 올라갑니다.
올라가다 숲으로 난 작은 샛길을 따라 들어가보니
혓바닥처럼 바다로 내민 그 길의 끝에서
바다가 다시 넓게 한눈에 내 시선을 채워줍니다.
이곳에서도 바다가 바다속 바위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2층 팔각정입니다.
바다로 목을 빼고 있는 샛길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사이
그녀는 이미 저 멀리 팔각정에 올라 있었습니다.
처음에 바닷가에서 나무로 된 계단길을 따라 올라왔을 때는
바로 앞의 언덕에 가려 보이질 않더니
등대쪽으로 갔다가 돌아오며 그 언덕을 올라서니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 팔각정입니다.
이제 저도 팔각정에 올랐습니다.
팔각정의 바로 아래쪽엔 포토존이 있습니다.
사람은 뜸하고 벤치 두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해뜰 때 사진찍기 좋은 위치 같습니다.
겨울엔 해가 상당히 남쪽에서 뜰 것 같습니다.
북쪽으로 많이 올라왔나 봅니다.
팔각정에서 내려가다 보니
숲의 나무들 사이로 거진항이 보입니다.
거진이란 말은 내 고향에선 거의와 같은 말입니다.
거진 다했다고 하면 그건 거의 다했다입니다.
거진으로 들어오며 난 그녀에게
거진은 가도가도 도달할 수 없는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거진에 도착한 뒤에도 여전히 거진 다 왔으니 말입니다.
거진이 내려다 보이는 이 동산도 몇해전 산불이 났을 때
그 불길이 미쳤던 곳입니다.
나무들의 밑둥이 아직도 시커멓더 군요.
그 생채기를 딛고 다시 생명을 복원시켜 가는 자연이 놀라웠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던 길과 다른 길로 잡았습니다.
그래봤자 바로 옆의 길이긴 하지만
중간에 샘터가 있다는 표지에 솔깃하여 그리로 발을 옮겼습니다.
샘은 있었지만 수질검사에 불합격해 먹을 수 없으니 먹지말라는 안내 문구가
우리들을 아쉽게 했습니다.
대장균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었다는 군요.
이런 산중턱에 무슨 대장균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냥 졸졸 흐르는 물소리만으로도 목을 적신듯 했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다 바라본 바다에서 배 두 척이 그려낸 풍경도
또다른 선물이 되었습니다.
샘터가 있는 길엔 무성한 갈대도 있었습니다.
바다가 끊임없이 몸을 뒤채며 물결을 만들어낼 때,
갈대는 그 바람을 산중턱까지 끌어들여 함께 몸을 뒤채며 호흡을 맞춥니다.
그때는 아마 바다도 물결이고, 산도 물결일 듯 싶습니다.
다 내려오니 바다 위로 몸을 내민 작은 바위 위에서
갈매기 한마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끊임없이 일렁이며 높낮이를 조율하고 있었지만
바위는 그에 휩쓸리지 않고 제 높이를 일정하게 고집하고 있습니다.
갈매기 한마리가 그 든든한 높이의 고집에 다리를 의탁한채 휴식을 취하고,
또다른 한마리는 높낮이를 조율하는 바다에 몸을 의탁한채 휴식을 취합니다.
높이를 단단히 굳힌 바위 위에도,
잠시도 높이를 재워놓는 법이 없는 바다 위에도,
똑같이 갈매기의 휴식이 있습니다.
난 그 둘의 휴식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닷 바람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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