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그다지 멀리 여행한 기억이 없다.
어느 하루, 남원 근방의 봉화산을 다녀오긴 했지만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는 그런 여행은
여행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엔 좀 쑥스럽다.
그냥 나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렇지만 꼭 멀리가야 사진이 나오는 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여행길에 나서 멀리 걸음하는 곳들도
알고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매일 눈앞에 두는 일상이며,
그들에겐 오히려 내가 사는 서울이 먼 여행지이다.
나는 올해는 주로 내가 사는 곳의 근방을 맴돌며 사진을 찍었다.
올해 찍은 사진 가운데서 다달이 하나씩 뽑아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월 3일 서울 인사동)
1
인사동의 한 한복점 안,
빨갛게 익은 감이 늘어서 있다.
아마도 가을은, 지난 가을, 감이 빨갛게 익었을 때,
그 걸음을 멈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점 안으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걸음을 멈추고 있다.
오늘은 내가 그 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2월 6일 경안천 습지공원)
2
나무들은 겨울엔
가지 사이를 비워둔다.
비워두면 가지 사이가 휑하다.
시리지 않을까.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3월 17일 강원도 횡계의 선자령)
3
3월의 눈소식에 강원도의 대관령으로 내려갔다.
산행이 수월한 선자령에 올랐다.
나무의 빈가지 사이에 눈이 채워져 있었다.
나무 가지 사이를 비워둔 이유를 알겠다.
그 자리는 눈의 자리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23일 경기도 안성목장)
4
봄이 오자 이제
가지 사이는 초록 이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흙빛을 그대로 내비치던 밭에도
초록빛 보리가 채워졌다.
겨울이나 봄이나 항상
빈자리를 채워주는 색이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5월 19일 천호동 우리 집)
5
우리 집 마당의 5월은 언제나
붉은 장미의 계절이다.
비가 한줄금 훑고 지나간 어느 날,
그 장미잎에 작은 물방울 보석 하나가 걸렸다.
그 투명 속에 장미의 붉은 색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물방울이 투명으로 저 혼자 깨끗한 척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투명 속으로
언제나 곁에 있는 색을 받아들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6월 22일 춘천 청평사 입구)
6
구름이 일제히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무들도 고개를 젖히고
일제히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내 시선도 한참 동안
목이 아프도록 하늘에 머물렀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7월 12일 서울 인사동)
7
올해는 서울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시화전을 연
김준태 시인을 볼 수 있었다.
김준태 시인은 나에겐 “밭의 시인”이다.
“밭고랑에—
씨앗을 던지면 싹이 트지만
총칼을 던지면 녹슬어버린다”는 시로 내게 새겨져 있는 시인.
그 짧은 한편의 시로 밭의 무한한 생명을 알려준 시인.
그의 얼굴은 밭 그 자체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8월 2일 강화 분오리항)
8
안개가 밀려든 바다는 수평선을 갖지 않는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하얗게 지워진 세상.
경계가 지워지면 갑자기 세상은
어디를 봐도 아득해진다.
그 아득함 속엔 한번 그리로 걸음을 내딛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듯한 불안이 있다.
안개낀 날, 그 불안을 견디려면
우리는 서로서로를 시야의 한계 내에 두어야 한다.
길이 모두 지워진 날,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길이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9월 3일 서울 한강)
9
한강은 흐른다, 매일.
저녁해를 보겠다고 서쪽을 향하여.
아침에도 동쪽을 등지고 서쪽으로 흐른다.
그렇다면 매일 아침해를 보겠다고
동쪽으로 분주하게 흐르는 강도 있을까.
아마도 양양의 남대천은 매일 그렇게 흐르지 않을까.
한강은 어떨까.
영원히 아침해는 볼 수 없는 것일까.
혹 아침 나절 바다에 도달했을 때,
고개를 돌려 동쪽에서 떠오를 아침해를 보겠다고
분주하게 서해로 걸음하는 것은 아닐까.
바다는 한강이 고개를 돌려
아침해를 맞는 곳은 아닐까.
저녁해를 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한강의 저 아래쪽에 알고 보면
고개 돌려 마주할 내일의 아침해가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0월 14일 서울 길동의 허브공원)
10
하얀 가을꽃은
곧 눈의 계절이 온다는 전주곡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1월 2일 남한산성)
11
가을 단풍은 손을 흔든다.
그건 여름에게 잘가라는 안녕의 손짓이기도 하고
또 오는 겨울에게 어서오라는 환영의 손짓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손짓을 가장 반기는 것은
여름도, 겨울도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가을이 오면, 여름이나 겨울, 그 어느 계절도 생각않고
그저 단풍과 하이화이브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2월 19일 강원도 거진의 화진포)
12
갈대는 빛을 머금고, 반짝반짝 빛을 낼 때가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찾는 사람에게 주려고
갈대가 빛을 모아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갈대가 하얗게 빛날 때,
그건 우리에게 주려고 모아둔 빛과 색인지 모른다.
그냥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옷 하나를 신경써서 고르고, 긴시간 화장을 하듯,
그렇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듯이,
갈대도 우리에게 주려고 빛을 모아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0 thoughts on “Photo 2007”
천천히 보고 있어요.
유난히 사람들과 마찰이 많은 한 해였는데
그것도 가까운 사람들과 1월부터 시작해 12월까지 …
그럴 때 동원님 사진과 글이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는 결국 이렇게 밖에 못하네요.
2008년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기를 빕니다.
살다보면 그런 해가 있더라구요.
저에겐 지난 해가 많이 그랬던 것 같아요.
날들은 많으니까 좋은 날이 올거예요.
찾아주시는 거 고맙습니다.
내년이 좋은 해가 되길 빌께요.
커피도 같이 마시고 엄청 붙어 다니시고
정말 좋은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내년도 기대합니다.
지도를 들여다 보았더니
주로 강원도 인재와 내촌쪽으로 다녀서
내년에는 춘천이랑 화천 방향으로 몇번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인제와 철원 사이의 양구, 화천은 거의 안갔더군요.
올해는 엄청 붙어다녔나보다.
사진을 보니 대부분 같이 다녔네.
내년에도 착~ 달라붙어서 다녀야쥐~~~^^
이 사진으로 달력 하나 만들어서 걸어놓자.
내가 만들어줄게^^
올해는 시때가 잘 맞았나 보네.
혼자 간 곳은 춘천 청평사 정도밖에 없는 것 같군.
올해도 한해 잘 보냈다.
여행 한 번 쫙 다녀오는 기분이예요.
사진 참 좋아요.
장미꽃위의 물방울은 장미를 타고 올라가는 투명한 곤충같아요. 위에 까만 눈땜에.
8월의 바다는 대단히 잔잔했군요.
3척의 배가 원근감을 확실히 보여주고요.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넣으면 좋을거같은 사진이예요.
올해는 꼭 집에만 있었던 것 같은데
사진 고르면서 보니까 올해도 많이 돌아다녔더군요.
이번에 동해가보니까 동해가 너무 가까워요.
천천히 가도 3시간이면 갈 듯.
각종 공원이나 산이 입장료 무료가 되면서
특히 여름에 자주 나간 것 같습니다.
동원님과 똑같은 자리에서서 찍어도 저렇게 멋진 사진 나올 수있을지 궁금.^^
제가 좋아하는 홍시는 참 먹음직스럽게 나왔네요.
다른 사진도 넘넘 멋져요.
장미잎은 어느 여인의 한복 치맛자락인 줄알았네요.
동원님은 혹시 사진전시회 안하시나요?^^
올해도 며칠 안남았네요.
두 분 마무리 잘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전시회를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사진은 좋아서 하는 수준이죠.
가끔 사진찍어주고 돈도 벌긴 하지만요.
평등공주님도 내년에 행복과 즐거움을 한아름 안아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