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와 나무, 강과 산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2월 11일 경기도 두물머리의 강변에서

바로 눈앞에는 갈대가 있었다.
갈대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허리를 완연하게 꺾으며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그 뒤엔 나무가 서 있었다.
나무는 작은 바람에겐
약간의 미동을 내주었지만
대부분 꼿꼿한 자세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나무의 뒤에는 강이 있었다.
강은 항상 흘러가며
자리를 고집하는 법이 없었으나
겨울엔 얼어붙어
잠시 수면의 걸음을 멈추었다.
얼어붙은 강은 그 위에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겉의 걸음은 멈추었으나
속의 걸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강건너엔 산이 있었다.
산은 어떤 바람이 불어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심하게 흔들리는 존재와
자리를 지키며 조금씩 흔들리는 존재,
끊임없이 흐르다 잠시 걸음을 멈춘 존재,
미동도 없이 우뚝 선 거대한 존재가
두물머리의 풍경 속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4 thoughts on “갈대와 나무, 강과 산

    1. 여긴 사실 포클레인에 생명으로 맞서고 있는 풍경이죠.
      올해 4월 총선이 단순한 선거를 넘어 이 풍경을 지키는 싸움이 될 듯 싶어요.

  1. 겨울 하늘까지 두물머리 친구들이 다 나왔네요.
    저는 화면에서 작게 보이는 얼어붙은 강물 위로 눈이 쌓인 걸 보면서,
    저 밑에선 여전히 도도하게 흐르는 속의 흐름이 먼저 생각났어요.

    1. 얼음이 얼긴 했는데 그 밑의 강이 살이있는게 분명하더라구요.
      꾸궁꿍 하는 강의 박동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었거든요.
      시골 살 때 겨울 강변에서 들어본 그 소리를 오래간만에 들어봤어요
      사실은 얼음갈라지는 소리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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