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 소년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13일 서울 마포의 한강변에서


소년 하나가 비둘기를 졸졸 따라간다.
따라가며 비둘기야,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비둘기는 소년의 인사를 알아듣질 못한다.
그저 귀찮다는 듯이 소년의 인사를 팽개치고
줄행랑을 놓듯이 계속 앞으로 바쁜 걸음이다.
대개의 아이들은 비둘기에게 안녕하고 인사하지 않는다.
갓 걸음마를 뗀 아이마저도 비둘기를 보면
비둘기를 풍선처럼 하늘로 날리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비둘기를 보면 비둘기를 향하여 돌진하다.
아이들이 돌진하면 비둘기들은 깜짝 놀라고
깜짝 놀라면 비둘기들은
마치 터질 듯이 속을 채운 풍선이라도 되는양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대개의 아이들은 그렇게
비둘기를 풍선으로 만들어 하늘 높이 날리며 놀고 싶어한다.
그때마다 비둘기는 깜짝깜짝 놀라고
깜짝깜짝 놀래켜야 비둘기는 풍선이 된다.
그런데 소년은 비둘기를 풍선으로 만들어 하늘로 날릴 생각이 없다.
소년은 그냥 비둘기와 친구가 되고 싶다.
아마도 소년은 잠깐잠깐 놀랄 때마다
풍선이 되어야 하는 비둘기의 비애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아마도 말을 했다면 비둘기들은
야, 너희들이 놀라게 할 때마다
난 풍선이 되다 못해 놀람으로 너무 부풀어 올라
빵터져 버릴 것 같아, 이 망할 녀석들아라고
아이들을 향해 벌써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아는지
소년은 재미나다는 이유로 비둘기가 풍선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냥 비둘기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하며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비둘기에게 인사를 한 아이는 난생처음이다.
그러나 비둘기가 그동안 많이 시달렸나 보다.
소년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
비둘기는 눈치없이 소년의 인사를 팽개치고
세상의 아이들이 다 귀찮다는 듯이
그저 앞으로 바쁜 걸음을 옮겨놓기만 한다.
아마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비둘기가 알아듣지 못했던 소년의 마음을 시가 채워
둘 사이를 이어줄 것이다.
시가 채워 이어주는 둘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그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기대를 갖고 기다려볼 수밖에.

4 thoughts on “비둘기와 소년

  1. 요즘 털보님 포스팅엔 제가 좋아했던 시인과 촌장 노래 타이틀이 많이 나오네요.
    고양이를 노래했던 하덕규는 비둘기에 대한 노래도 잘 만들었죠.
    거기도 소년이 나왔는데, 확실히 비둘기와 소년의 이미지는 통하는 게 있나봅니다.

    1. 저는 노래로는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 집짓는 노래밖에 잘 떠오르질 않더라구요. 시에도 비둘기들이 자주 등장해요. 나중에 현승이가 비둘기의 노래를 어떻게 들려줄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2. 태그 ‘김종필과 정신실의 아들’ 빵 터지고 신선해요.ㅎㅎㅎ
    저 이 글 페북으로 가져갔어요.
    이 날 현승이 일기 마지막 부분에요…
    ‘다 놀고 이제 가자고 하니까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라고 적혀 있어요.^^
    저는 이 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제제와 뽀르뚜까 아저씨 생각이 났거든요.
    이 글 읽고 맘이 뭉클하더니 왈랑거려요.^^

    1. 그날 저도 후유증이 있었어요.
      그 다음 일정에 가긴 갔는데.. 에이씨, 현승이랑 계속 놀걸 그 생각만 들었다는. ㅋㅋ
      그리고 모임은 하루에 하나만 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두 개를 하니까 서로 비교가 되서 안좋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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