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사과 상자 하나가 놓여있다.
“봉화 사과”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찍혀있는 과일 상자이다.
평범한 과일 상자로 보이지만
이 상자는 사실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자랑할만한 이력을 갖고 있다.
처음에 이 상자는 경북 봉화에서 맛난 사과를 잔뜩 담고 올라와
우리에게 가을의 풍요를 선물한 과일 상자였다.
그때만 해도 상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고 평범한 상자에 불과했다.
그런데 딸이 미국으로 떠나고 난 뒤
이 상자는 다른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바로 딸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그 안에 담고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콜럼비아까지 가게 된 것이다.
사실 물건너가는 상자는 많을 것이다.
딸이 일본에 있을 때도 몇번 딸에게 택배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마다 물품을 담은 상자가 물을 건너 딸에게로 갔다.
그리고 가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번 상자는 콜럼비아에서 딸과 함께 머물다
딸의 물품을 담고 다시 한국으로 건너왔다.
물건너온 상자도 사실 흔하다.
그러나 물건너 갔다온 상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상자는 단순히 물을 건너가거나
혹은 물을 건너오는데 그치지 않고
물을 건너가고 또 건너왔다.
나도 물을 건너갔다 온 것은 딱 한번 가까운 일본밖에 없는데
이 상자는 그 멀고먼 미국땅을 건너갔다 왔다.
물건너갔다온 이력으로 보면
나보다 한수 위의 대단한 상자이다.
며칠 동안 거실에 두고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나도 못가본 미국까지 다녀온 놀라운 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