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후의 단상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6월 7일 서울 시청앞의 촛불 집회에서

선거는 끝났지만 후유증이 크다.
선거 끝난 뒤의 단상들을 모았다.

•패배의 아픔이 크긴 하지만
서울에서의 작은 승리를
모두가 나누어 가지면서 아픔을 넘어서면 안될까?
어차피 함께 사는 공존의 세상을 꿈꾼 거니까
작은 승리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패배의 극복도 새롭게 써봤으면 좋겠다.

•저들에겐 48퍼센트의 패배지만
우리에겐 지면서도 이긴 48퍼센트의 승리이다.
저들에게 말려들지 말자.
우리 집 아이가 매번 30점 받다가 40점이라도 받아오면
우린 아이구, 이번에 내 새끼 엄청 잘했내 하고 칭찬하지 않던가.
희망을 갖자. 다들 오케이?

•내 평생 이번처럼 감동적인 선거는 없었다.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 선거였으니까.
난 그 감동의 자리를
더 이상 지역이나 세대에 대한 분노나 패배감에 내주지 않겠다.
우리의 꿈은 여전하다.
다만 그 꿈의 실현이 조금 미루어졌을 뿐.

•전과 14범의 사기범이라도 좋다.
다 용서해 줄테니 잘살게만 해다오가
2007년에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정권에게 사기를 당했다.
독재도 상관없다.
다 용서해 줄테니 잘살게만 해다오가
2012년의 박근혜 당선을 가져온 것이 아니겠는가.
가끔 참 내가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 선거를 보니 내가 아니라
박근혜 지지자들이 참 순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젠장할, 그 옛날엔 새벽종이 울렸다며
빨리 일어나서 일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새벽마다 꼬끼오 거리면서
빨리 일어나 일하라고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거꾸로 가는 이 시대에 저항하는 의미로
늦잠과 게으름을 생활화해야 겠다.

•낮술의 힘 – 1000원하는 막걸리 한병으로
벌건 대낮의 세상을 흔드는 우리들의 힘.
박근혜 세상을 견뎌가는 우리들의 힘.

•어떤 신문 기사를 보니
청년들에게만 사랑한다고 하는 바람에
중장년층이 삐졌다는 구만.
에이구, 이 못난 어른들아,
모두 함께 청년들을 사랑하면 되는 것을.

•철수야, 너라도 돌아와라.
힘들 때 이땅에 함께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지 않겠나.
부담주지 않으려 떠났을 텐데..
사정이 그렀게 됐구나.
빤스 때문에 나간 건 아니니 따로 준비는 안해놓으련다.

•젠장 어쨌거나 색깔로 보면
이번 선거로 남북 통일 되었네.
이제는 남이나 북이나 붉은 정권.

•날씨도 체감 온도는
날씨 예보에서 알려주는 기온과는 많이 다르다.
현실도 체감 현실은 실제 현실과 많이 다르다.
박근혜가 당선되었다고 하는데 체감이 되질 않고 있다.
사람들이 자꾸만 다시 확인하고 싶어하는 이유이다.

•7, 80년대만 해도 독재 권력을 탓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통제된 사회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수고만 곁들이면 언론 통제를 뚫고
인터넷 세상에서 얼마든지 자유와 진실을 향유할 수 있지 않은가.
민주와 자유도 떠먹여주어야 하는 것인가.

•7, 80년대가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하여
사람들이 진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시대였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진실이 옆에 있어도 외면하는 시대이다.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엄연한 진실을 볼 수 있게 되어도 고개를 돌려버린다.
진실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시대는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면
눈앞의 진실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대학다닐 때,
도서관에 들어오는 타임지에
군데군데 시커멓게 먹칠이 되어 있었다.
이른바 언론 검열이었다.
그러면 뭐하나. 햇볕에 비춰보니 다 보이던데.
하지만 이제는 타임지가 대놓고
독재자의 딸이라고 알려줘도 보질 않는다.

•과거엔 “살바도르”나 “로메로”와 같은 외국 영화를 통해
군사독재라는 우리의 현실을 보아야 했다.
난 그 영화를 정식 상영에 훨씬 앞서 동국대에서 봤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인터넷 뒤지면 이땅에서 만든 “MB의 추억”이나 “유신의 추억”,
그리고 “백년전쟁” 등등을 누구나 볼 수 있다.
진실은 널려있다.
다만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을 뿐.

•술취했다.
술취하니 조금 살만하네.
술취해야 겨우 살만한 엿같은 세상.

•내가 대학 다닐 땐
진실은 대학의 게시판 대자보에 갖혀 있었다.
진실은 게시판 대자보를 벗어나질 못했다.
그 전에는 등사판으로 밀어
운동권이 나누어주는 전단지 속에 진실이 갇혀 있었다.
지금은?
이제는 진실이 인터넷이 갇혀 있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한 뒤로
더 이상 진실이 갇혀있는 법은 없을 줄 알았는데
진실은 인터넷의 바깥으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진실은 인터넷 시대가 와도 여전히 갇혀있다.

•속은 것을 알면서도 5년을 참아야 하는 이 부조리한 세상.
사기친 인간에게 5년 동안 권좌를 보장하는 선거라는 이름의 이 모순.
한번 속지 두번 속냐는 말은 다 뻥이다.
한번 속으면 한번에 그치지 않고 두번 세번도 속을 수 있다.

•날씨가 너무 춥다.
문(Moon)이 당선되었어도 이렇게 추웠을까.
박이 당선되자 날씨가 그냥 팍(Park) 고꾸라졌다.

•박근혜가 당선되고 나서 돌아가는 일련의 사태들은
불행히도 박근혜가 뽑혔는데도 괜찮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니 정권 교체를 했어야 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준다.
노동자들이 연이어 목숨을 버리고
선거 기간 동안 그렇게 외쳤던 통합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물이 대변인이 되었다.
이런 일은 5년간 계속될 것이다.
5년간을 확인하고도
5년 더 확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이 믿기질 않는다.

•52퍼센트면 52퍼센트지,
52퍼센트가 100퍼센트냐.
제발 52퍼센트 갖고 100퍼센트로 착각하지 마라.
너희의 턱밑에 마음이 다른 48퍼센트가 있다.
겨우 3퍼센트 차이다.
국민들 마음을 다까면 반대의 결과일 수도 있다.

4 thoughts on “대통령 선거 후의 단상

    1. 그것도 깊이 생각해서 그런 놈을 뽑았다는 거 아니겠어요.
      환멸의 정치가 어떤 건지 바닥까지 보여주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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