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로 엮은 사랑 연서 네번째

어느 날 변산반도의 채석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근처에서 채석강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거기는 뭐하러 가려고 그러누, 거긴 돌밖에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웃으며,
바로 그 돌보러 가는 거예요라고 답했다.
때로 아주 흔하면 그것이 갖는 소중함이 빛을 잃곤 한다.
비오는 날은 빗방울이 가장 흔하다.
그 흔한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장 흔한 것 속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빗방울을 들여다보며
일상의 사랑과 그 소중함을 돌아보는 사랑 연서를 써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맑고 고왔죠.
작고 왜소한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투명하게 빛날 수 있었을까요.
평생을 당신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내내 행복하고 즐거울 것 같았어요.

Photo by Kim Dong Won

당신이 고개를 끄덕여
나의 삶이 되어 주겠다고 했죠.
그것은 온통 당신을 뒤집어 쓰는 거였죠.
그 느낌이 궁금하시다면
기분좋게 온몸으로 맞은 한여름의 빗줄기를 생각해 보세요.

Photo by Kim Dong Won

당신하고 함께 살고부터
당신은 내 마음 속의 은하수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한낮에도 내 마음엔 당신이 총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나와 당신을 두고
깨소금이 쏟아진다고 했습니다.
나는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을줄 알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하지만 산다는 게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 하던가요.
바람이 흔들 때마다 우리도 흔들렸죠.
사람들이 그걸 일러 세파라고 불렀어요.
우리들의 다툼도 점점 잦아졌죠.
또 매일 그렇고 그런 일상이 무료함을 불러오기도 했구요.
사랑이 점점 옅어지고 바래고 있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던 어느날 힘들대로 힘들어진 나는 아무 미련없이
당신을 주루룩 쏟아버리고 말았어요.

Photo by Kim Dong Won

오호, 당신. 당혹스럽겠지요.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잘살고 있으니까요.
내 얘기는 우리가 헤어졌다는 뜻은 아니예요.
그냥 당신을 처음 내 가슴에 담았을 때의 그 첫느낌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죠.
그건 같이 살면서도 남과 같은 아주 잔인한 거예요.
언제 길을 갈라설지 모르는 비탈에 선 위험이라고나 할까요.

Photo by Kim Dong Won

그렇게 우리는 같이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사람들처럼 살았죠.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가졌던 그 소중했던 첫느낌은
마음의 변방으로 밀려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살았어요.

Photo by Kim Dong Won

오늘 밖에 비가 옵니다.
창에는 온통 빗방울 뿐이군요.
세상이 모두 비에 젖었어요.
이 빗줄기 끝에서 또 세상이 한층 푸르게
그 진초록빛 생명감을 뽐내겠지요.

Photo by Kim Dong Won

이게 어찌된 일이죠.
마음을 열어보니
당신이 한가득이었어요.
밥짓고 빨래하고 무료하게 반복해온 당신의 일상 하루하루가
내 마음에 투명함으로 한가득 고여 있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사랑이란 그런 건가봐요.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
그 첫느낌으로 평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한가득 담긴 당신의 일상에서
그 첫느낌을 다시 보는 건가 봐요.
당신이 그때처럼 내 마음의 한가운데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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