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변산반도의 채석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근처에서 채석강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거기는 뭐하러 가려고 그러누, 거긴 돌밖에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웃으며,
바로 그 돌보러 가는 거예요라고 답했다.
때로 아주 흔하면 그것이 갖는 소중함이 빛을 잃곤 한다.
비오는 날은 빗방울이 가장 흔하다.
그 흔한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장 흔한 것 속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빗방울을 들여다보며
일상의 사랑과 그 소중함을 돌아보는 사랑 연서를 써보았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맑고 고왔죠.
작고 왜소한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투명하게 빛날 수 있었을까요.
평생을 당신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내내 행복하고 즐거울 것 같았어요.
당신이 고개를 끄덕여
나의 삶이 되어 주겠다고 했죠.
그것은 온통 당신을 뒤집어 쓰는 거였죠.
그 느낌이 궁금하시다면
기분좋게 온몸으로 맞은 한여름의 빗줄기를 생각해 보세요.
당신하고 함께 살고부터
당신은 내 마음 속의 은하수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한낮에도 내 마음엔 당신이 총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나와 당신을 두고
깨소금이 쏟아진다고 했습니다.
나는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을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산다는 게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 하던가요.
바람이 흔들 때마다 우리도 흔들렸죠.
사람들이 그걸 일러 세파라고 불렀어요.
우리들의 다툼도 점점 잦아졌죠.
또 매일 그렇고 그런 일상이 무료함을 불러오기도 했구요.
사랑이 점점 옅어지고 바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힘들대로 힘들어진 나는 아무 미련없이
당신을 주루룩 쏟아버리고 말았어요.
오호, 당신. 당혹스럽겠지요.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잘살고 있으니까요.
내 얘기는 우리가 헤어졌다는 뜻은 아니예요.
그냥 당신을 처음 내 가슴에 담았을 때의 그 첫느낌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죠.
그건 같이 살면서도 남과 같은 아주 잔인한 거예요.
언제 길을 갈라설지 모르는 비탈에 선 위험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우리는 같이 있으면서도 마치 없는 사람들처럼 살았죠.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가졌던 그 소중했던 첫느낌은
마음의 변방으로 밀려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살았어요.
오늘 밖에 비가 옵니다.
창에는 온통 빗방울 뿐이군요.
세상이 모두 비에 젖었어요.
이 빗줄기 끝에서 또 세상이 한층 푸르게
그 진초록빛 생명감을 뽐내겠지요.
이게 어찌된 일이죠.
마음을 열어보니
당신이 한가득이었어요.
밥짓고 빨래하고 무료하게 반복해온 당신의 일상 하루하루가
내 마음에 투명함으로 한가득 고여 있었어요.
사랑이란 그런 건가봐요.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
그 첫느낌으로 평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한가득 담긴 당신의 일상에서
그 첫느낌을 다시 보는 건가 봐요.
당신이 그때처럼 내 마음의 한가운데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