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길의 저편에서
억새가 연신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는 손짓이었다.
여름 뙤약볕에도
하나 그을리지 않은 새하얀 손이었다.
억새의 뒤편에선 구름이 내 시선을 가져가
내놓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들판은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풍경은 이 가을 정경의 한가운데 서보라며
내게 반듯하게 뻗은 논둑길을 내주었다.
나는 잠시 논둑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메뚜기들이 급하게 좌우로 흩어지며 길을 열었다.
내 걸음에 감읍했다며 벼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느닷없는 벼들의 감읍에 저으기 당황스러웠으나
요즘은 이런 풍경을 보고도 다들 차타고 휙휙 지나친다며
여기 오는 걸음만으로 감읍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황송하여 몸둘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풍요가 꼭 내 논과 밭에서 거두는 결실에서만 오진 않았다.
걷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가을의 한순간이었다.
2 thoughts on “억새와 구름이 있는 가을 들판”
화면이 아름다운 색들로 꽉 차 있네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 그리로 데려다 주면 좋겠네요.^^
차를 세워놓고 한 세 시간 걸었는데 역시 풍경은 걸어다니며 몸으로 체감해야 하는 거구나 싶더라구요. 가을엔 역시 논밭이 있는 곳이 최고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