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우화

Photo by Kim Dong Won
2014년 12월 17일 우리 집에서

그 집의 한쪽 구석에 에어컨이 서 있었다.
한여름, 그 집을 찾았을 때 집안은 서늘했다.
에어컨 덕택이었다.
반팔밖으로 드러난 맨살을 자꾸 손으로 부벼야 했다.
겨울이 오자 에어컨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렸다.
주인은 얼마나 비싸게 주고 들여놓은 건데
아무 일도 안하고 지낸다며 에어컨을 내쫓았다.
한여름 열심히 일했던 에어컨은 졸지에 집을 쫓겨났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폭염과 함께
그 집 주인이 더위에 떠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다음 해 여름이었다.
나는 좀 의아했다.
아무리 더웠다고는 하지만
그 집에는 선풍기도 하나 없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 의문에 대해 누군가가
에어컨을 들여놓던 날, 구조조정을 한다며
집안의 선풍기를 모두 다 쫓아냈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심지어 그 집에선 부채도 집을 쫓겨났다고 했다.
우리 집에도 에어컨이 한 대 있다.
겨울에 빈둥거려도 집안에서 함께 잘 지내고 있다.
절대 쫓아낼 생각도 없다.
겨울에도 일좀하지라며 눈치줄 생각도 없다.
에어컨이 겨울에 일하면 집안도 집밖이 된다.
일도 시킬 때 시켜야 한다.
겨울에 에어컨 내쫓고
여름에 더위에 떠죽은 인간에게 배운
소중한 교훈이다.

4 thoughts on “에어컨 우화

  1. 맹동한파에 에어컨이라니, 사진만 봐도 추워지는데요.^^
    그저 고이 놔 두었다가 한여름에 부려먹으시죠.

  2. 여름에도 맘편히 일시켜 본적이 없던거 같은….
    그저 장식품으로 였던 기억 나네요..^^..

    ———————-

    선생님 건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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