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세상이 비에 젖는다.
비에 젖는 세상에 나무가 있고, 그 옆에 벤치가 있다.
비오는 날의 한강변엔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이 텅빈 한강변의 그 한적함을 나는 상상으로 채운다.
상상으로 채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누군가 자주 나무 옆의 벤치를 찾아와
그곳에서 멍하니 한강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다 간다.
그러면 나무는 벤치의 누군가를 마음에 품게 된
어떤 이의 환생이다.
어떤 이의 환생이 되어 그곳을 살게 된 나무는
비가 올 때마다 벤치의 우산이 되고 싶어 했으나
아직 팔은 짧고 잎은 모자랐다.
그러나 나무의 꿈은 곧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쯤 나무의 누군가가 비오는 날,
비를 피해 벤치로 앉으면
그는 나무의 마음 속으로 들 것이다.
비오는 날, 사람이 한적한 한강변에서 나는 전설을 쓰고,
그리고 그 전설 속의 누군가를 나무와 함께 기다리며
비오는 날이면 언제나 한강을 찾겠다고 결심한다.
비오는 날이 수없이 지나갔으나
나는 그만 내가 쓴 그 전설을 잊고 말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전설을 쓰나, 그것을 곧바로 잊고 산다.
비가 오면 올해는,
잊고 산 그 전설의 자리로 다시 나가봐야 겠다.
2 thoughts on “비오는 날의 나무와 벤치”
미사리에서 올림픽도로 타고 서울로 오다 보면 강변 풍경이 근사한 곳이 많은데,
여기도 참 아늑해 보이는 게 좋네요. 저는 차에서 잠시 멀찍이 바라보기만 하는데,
가까이 가서 걷고 응시하고 머물기에도 좋아 보입니다.
집에서 걸어가면 금방 닿기 때문에 자주 가는 곳이죠. 원래 콘크리트로 덮었던 곳도 그냥 자연 상태로 복원을 해서 아주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