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낯을 익혀둔 바리스타를 알고 있으면 커피집을 들어가서도 따로 주문을 넣을 필요가 없다. 바리스타는 그날 내줄 수 있는 커피 가운데 하나를 골라 오늘은 이걸 한번 마셔보세요 하면서 알아서 커피를 내준다. 때문에 그날그날 바리스타가 내주는 커피가 다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그가 내준 커피가 때로 한잔의 바다를 이룰 때가 있다. 겉은 맑아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듯한데 잔의 바닥으로 심연이 있다. 깊이가 빤한데도 심연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한잔에 담긴 커피의 바다 뿐이다. 그때면 한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는 심연 깊이 잠수할 수 있다. 커피잔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심연은 온데간데 없어지나 그때쯤 사실은 내 몸이 잔속에 있던 심연에 닿는다. 내속에서 닿는 심연이다. 그날 바리스타가 내준 커피는 온두라스 커피였다.
2 thoughts on “커피의 바다”
커피를 가벼운 음료로 마시기만 하는데, 커피의 세계관이 실상은 깊고 그윽하군요.
커피집 이름에 걸맞는 손님의 상찬이 따로 없습니다.^^
커피에 관해 물어보면 신이나서 얘기해 주던 것이 생각납니다. 덕분에 커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