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와 은행나무 열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11일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산사나무 열매는 빨갛고,
은행나무 열매는 노란빛을 띤다.
열매 속에 산사나무의 빨간 꿈이 담겨 빨갛게 되었을 것이고,
또 은행나무의 노란 꿈이 담겨 노랗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산사나무와 은행나무의 꿈은 항상 그 색이 똑같다.
매해 똑같은 색의 꿈을 똑같은 열매에 담는다.
그러면 그 꿈이 지겹지 않을까.

내가 그런 의문을 가졌더니
산사나무와 은행나무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시선을 우리의 열매에 맞추고 있구나.
우린 항상 시선을 내 안의 열매보다
우리 바깥의 바람이나 하늘에 두지.
매일매일 바람이 다르고, 하늘의 낯빛도 같은 날이 하루도 없어.
어쩌다 찾아오는 빗줄기의 걸음걸이도 같은 날이 없지.
그렇게 매일매일이 다른 바람과 하늘, 또 빗줄기를 우리 안에 담아가다 보면
한해의 끝에서 우리의 한해가 그렇게 열매로 영글어.
그래서 우리에겐 똑같은 열매가 아니라
한해한해가 새로운 또다른 열매지.’

아마도 그런 걸거다.
매년 산사나무와 은행나무에서 똑같은 열매가 여물지만
그 열매의 한해는 매해 달랐을 것이다.
하긴 산사나무와 은행나무의 열매가 그 색을 다른 색으로 바꾸었다면
아마 우리들이 엄청 당황스럽고 불안했을 것이다.
삶이 그렇게 불안해지면 견디기가 어렵다.
그래서 삶은 지루하고 따분하게 반복되면서,
그 지루함을 통하여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지루하고 따분하면 그것도 견디기 힘든 법.
그때는 나무처럼 내 일상에서 눈길을 거두어
어제 보낸 날씨와 오늘 맞은 날씨로 눈길을 돌려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흐렸는데, 오늘은 또 하늘이 말갛다.
하루하루의 날씨가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를 지나간다.
나에게 눈길을 맞추고 있을 때는
날씨가 매일매일 다르다는 것도 모르고 살게 되는 것 같다.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게 산사나무와 은행나무가
매년 똑같은 열매 속에 다른 꿈을 담아내며 살아가고 있는 비밀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산사나무와 은행나무는 모두
한해내내 시선을 하늘에 두고 사는 것 같다.
사는게 힘들고 따분할 때마다 자꾸자꾸 하늘을 보아야 겠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1월 11일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4 thoughts on “산사나무와 은행나무 열매

  1. 어제의 하늘 정말 당장 사진 찍고 싶을 정도로 맑고 구름도 하얗고 멋졌었는데.
    오늘은 구름 잔뜩이에요. 눈이라도 내리려나..
    김동원님은 벌써 첫눈 보셨겠네요? ^^
    함박눈의 첫눈 보고싶어요. 진눈깨비말구.^^

    1. 어제 첫눈 봤어요.
      제법 내리더군요.
      근데 곧바로 비가 되어 버렸죠.
      어느 해 서울에 참 눈이 많이 왔었는데…
      원고가 잘 안풀려서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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