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어떻게 노는가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2월 16일 속초에서


바람이 아주 거셀 때면
그 날은 바다가 높이뛰기를 하는 날입니다.
바람을 타고 푸른 바다를 내달려선
평상시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갈증나게 엿보았던 방파제를 한순간에 뛰어넘습니다.
항상 방파제는 굳건하고 아득하기만 했지요.
그 위를 넘본다는 건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허리쯤을 더듬거리다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거세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방파제 위에서 밤마다 불을 밝히던 그 높은 등대까지도
순식간에 뛰어오를 수 있죠.
그렇게 바다가 높이뛰기를 하며 노는 날은
절대로 그 곁으로 가면 안됩니다.
하얗게 질리도록 높이 뛰어올랐다 내려올 때면
그 밑에서 걸리적거리는 건
무엇이든 죄다 걷어차 버리거든요.
바다가 높이뛰기하며 놀 때 그 곁에 있다가
그 발에 걷어차이면 그 누구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바다가 높이뛰기를 할 때는
그냥 멀찌감치서 구경해야 합니다.

바람이 좀 잔잔할 때는 노는 게 달라집니다.
바람이 슬쩍 등을 밀어주면
바다는 못이기는 척 모래 사장으로 올라와선 납짝 엎드립니다.
뭐, 볼을 부비는 거지요.
바람이 등을 밀긴 했지만
바다도 모래 사장으로 올라와 얼굴을 맞대고
볼을 부비고 싶었던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낯빛이 바뀝니다.
보통 우리는 이런 경우 낯빛이 붉어지지만
바다는 낯빛이 하얗게 바뀝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은 붉고,
바다의 부끄러움은 하얗습니다.
바다는 바람이 좀 잔잔할 때는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그러고 놉니다.
바다가 그러고 놀 때는
바다 곁으로 가까이 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놀리진 마세요.
얼레리 꼴레리는 바다를 깊은 바닷속으로 숨어버리게 만들지도 모르니까요.
그냥 모른 척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며
천진하게 노는 바다와 모래의 하루를 느끼다가 오세요.
바닷가를 거닐 때 맨살에 스치는 바다의 느낌이 바로 그런 거랍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월 20일 양양에서

5 thoughts on “바다는 어떻게 노는가

  1. ^^
    음..오늘은 아름다운 바다에 맘이 가네요.
    님의 쓰신 이야기가 너무 이쁘고 고와요.
    동원님은 어떤 감성이시기에….왕 부럽삼-;;;
    여사님과 고운주말 이루세여!……
    ^^

  2. 강은 잔잔하게 흐르며 빛나는게 아름답고
    바다는 파도랑 갈매기가 있어야 아름답더군요.^^
    갈매기가 없음 왜그리 허전하던지..
    만리포에 갔을땐 갈매기들이 이리 저리 날아다니는걸보며
    음..내가 바다에 있는거 정말 실감나는구나..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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