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에 취하여 일상을 버리다

Photo by Kim Dong Won


팔당의 한강 줄기 옆으로
결혼하는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한 마을이 있다.
지금은 폐쇄되어 버린 능내역 너머에 있는 동네이다.
아주 오래전, 능내역에 차를 세우고 건널목을 건너
그곳으로 조금 들어간 적이 있었다.
며칠전에 다시 가 보았더니
마을이 결혼 사진을 찍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고,
아예 세트장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노란색의 앙증맞은 비틀과 빨간색의 우편함,
들어가 앉아 사진찍기 딱좋게 만들어놓은 연밭,
그리고 호수를 뒷배경으로 걸려있는 그네 등등.
사진찍는데는 5천원이고,
소품도 대여해준다고 쓰여있었다.
그날도 한쌍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수한 쌍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겠지.
왜 사람들은 저렇게 똑같은 환상에 빠져드는 것일까.
돌아보면 나의 결혼도 저런 환상에서 크게 벗어났던 것 같지는 않다.
어쨌거나 나도 흰색 드레스의 결혼을 통과의례처럼 거쳤으니까.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환상을 찍는다.
그들의 환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그들에게도 일상이 있겠지.
분명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떤 학교를 다니고,
그리고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을 것이며,
그러다 어떤 직장에 들어가 밥벌이를 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
그들이 자란 동네,
그들이 졸업한 학교,
그리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
갑자기 내 머리 속으로 잠깐 동안 그들의 일상이 쉬임없이 지나갔다.
그 일상의 장면들은 지나가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얘기를 찍어
둘의 일상이 사진첩 속에서 서로 만나게 하면
그것처럼 좋은 결혼 사진이 있을까.
결혼 사진찍는데 들어가는 돈도 수월치 않은 것 같은데
환상에 취하여 자신들의 삶이 알알이 밴 일상을 버리고,
그들은 도대체 지금 저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이 즐겁게 사진을 찍고 돌아간 현장에서
나는 그들이 살아온 일상이 궁금했고,
그들이 버린 그 일상이 못내 아까웠다.
그 일상이 내 생각엔 저 환상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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