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다.
강원도 양양으로 가던 우리의 차를 세운 것은
길 양쪽으로 넘실대는 억새밭이었다.
그녀는 북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산자락 아래쪽에서 억새가 넘실대며
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고,
그 경계의 위쪽으로는 나무 사이사이로 자리를 잡은 흰눈이
파란 바다 색깔에 물들어 있었다.
산자락과 억새는 색과 몸짓으로 바다를 꿈꾸고 있었다.
나는 그 꿈을 보지 못했다.
그 꿈을 본 것은 그녀였다.
나는 남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멀리 산자락 아래쪽에서
바람이 일으킨 눈보라가 하얗게 날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눈보라를 쫓아갔다.
그녀도 그 장면을 보았지만
그녀의 똑딱이 카메라는 그곳까지 시선을 뻗칠 수가 없었다.
바람을 타고 하얗게 일어난 그곳의 눈보라는 내가 담아두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도
내가 보지 못하는 풍경이 있고,
또 그녀가 잡아내지 못하는 풍경이 있다.
둘이 함께 하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도
세상을 두번 즐길 수 있다.
이번엔 그녀가 산자락과 억새에 담아낸 바다의 꿈이 훨씬 더 보기에 좋았다.